[보쿠로] 습관의 양각, 소유의 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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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23:58
* 됴님 (@dio_carpe) 생일 축전글! 쿠로오와 보쿠토의 잠자리 버릇 설정을 됴님의 연성에서 인용했습니다
쿠로오 테츠로는 버릇이 있다.
─ 습관의 양각.
"파스 갈아 드릴까요."
코트 위를 아주 날아다니곤 하는 에이스 스파이커의 온 몸이 성하지 않은 것은 딱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코 끝을 스미는 에어파스의 냄새로 정의되는 경기장의 향만큼, 향수나 탈취제와는 연이 없는 보쿠토의 냄새는 보건실과 부실의 파스 냄새로 정의되곤 했다. 근육이 남아날까 싶을 만큼 뛰어다니고 보면 종아리나 등, 어깨, 목. 팔근육이나 허리 까지 온통 파스로 뒤덮이는 광경을 그는 영광스럽게 여겼다. 물론 열심히 뛰었다는 증표라도 된다는 듯 자랑스레 붙여두고 제대로 갈아준다던가, 챙기지는 또 못하는 탓에 그 파스들의 관리가 오롯이 아카아시의 몫인 것은 이쯤되면 지극히 당연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뒷목을 덮고 티셔츠 아래로 사라지는 넓은 패치가 구깃한 게, 아무래도 서너 경기를 뛰었다보니 금방 구겨져 갈아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는데.
"아니! 내가 갈 수 있... 괜찮아! 아카아시, 나 먼저 갈게. 내일 보자고, 헤이 헤이!"
말 까지 더듬어가며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뒤집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린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떨떠름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제가 선배 거짓말이나 숨기는 것. 정말 못하니 차라리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 드렸잖습니까. 새 한마리를 데려다 앉혀두고 거짓말을 시켜도 보쿠토보단 더 잘할 것 같았다. 누구와는 달리 눈치가 빠르고 예민한 편인 아카아시는 이미 그 파스 아래 사정이 대충 짐작을 끝내버린 후였으며, 달갑지 않은 그 사실을 애써 덮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잊어드려야 한다, 잊어야 한다. 모른 척, 해주자.
쿠로오 테츠로에게는 버릇이 있었다. 쿠로오의 버릇, 했을 때 그를 좀 안다 싶은 사람이라면 곧바로 뱉어낼 수 있는 드 특이한 잠버릇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오직 보쿠토 코타로만이 알고 있는 버릇이었다.
*
보쿠토 코타로는 버릇이 있다.
─소유의 음각.
초여름의 일교차에 교실 안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졌다. 입시에 쫓기는 고교 삼학년들의 교실은 타이틀만큼 삭막하고 퍽퍽하진 않았다만 킁킁 거리는 훌쩍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은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다들 몸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감기 환자가 적어도 열댓명은 되는 듯해 쿠로오가 더운 기가 있는 교실을 벗어났다.
"쿠로오, 너 안덥냐?"
그렇다고, 환절기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긴팔까지 껴 입을 답답한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죠. 쿠로오는 애써 '친절하게' 웃으며 괜찮다며 동급생의 물음을 얼버무렸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기 전인지라 겨울잠을 자던 냉방기는 아직 눈을 뜰 줄 몰랐다. 남몰래 시선을 휘적이며 쿠로오는 얇은 노트를 집어 부채질을 시작했다. 사실 더워. 딱 죽겠다며 쿠로오가 열을 식혔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바람마저 한 조각 불지 않는다.
"다쳤어?"
여기 저기 붙은 반창고에 귀찮은 질문이 하나 덧붙었다. 자의는 아니라도 긴팔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목 뒤나 살짝 걷은 팔뚝에서 엿보인 것인지 상대의 눈이 옷깃 아래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배구부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 게 아니던가. 배구부 주장에게 바라는 게 많다며 가벼운 타박을한했다. 물론 그 아래에 가려진 상처가 배구를 하다가 생긴 상처는 아니라는 게 모순점이었지만 쿠로오는 능글맞게 그 맹점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았다. 아무튼, 상세하게 설명해줄 만한 이유는 되지 못한단 말이지.
보쿠토 코타로에게도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할 버릇이다. 자연히 그 버릇에 골머리를 앓는 것도 단 한명밖에 될 수 없는.
오직 쿠로오 테츠로에게만 한정된 버릇이다.
*
쭉 뻗은 검은 고양이를 아래에 둔다는 것은 꽤 많은 리스크를 동반했다. 눈을 접어 웃으며 도발하거나, 제 눈에 차지 않으면 살살 돌려 벗어나거나. 요염한 만큼 속내가 꼬인 그에게 홀린다는 것은 좋게 말해야 직관적인 보쿠토에게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었다. 실은, 어려운 것을 넘어 완전히 그의 손바닥 위인지라 가끔은 상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들곤 한다. 그럴때면 고양이는,
"사랑한다며 아래 위가 어디에 있어?"
라고 일갈하곤 한다. 물론 보쿠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며, 그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그들 사이에 아래 위가 생기는 시츄에이션이라는 건 명백하게 존재했다.
침대 위에서.
"아파, 거기... 너. 버릇, 나쁘다고."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뻗은 허리선은 우위를 점했을 때야 눈에 담을 수 있는 절경이었다. 보쿠토는 이 때의 한껏 긴장해 수축한 쿠로오의 등부터 허리를 가장 좋아했다. 단단하고 탄탄하면서도 부드럽게 휘어지는 선과, 제 정을 받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아 위태로운 모습. 쿠로오의 어느 모습 하나 빼놓지 않고 사랑하는 보쿠토였지만 이럴 때의 그가 평소보다 배는 사랑스럽다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는 못한다. 너무 야한 탓도 있고, 뒤늦게 덧붙이며 보쿠토는 쿠로오의 목 뒤에 입술을 댔다. 쿠로오가 고양이를 닮은 것은 검은 꼬리라는 이름이나, 얄쌍한 눈꼬리. 밤에 빛나는 동공이 아니더라도 그 앙칼짐이 한 몫을 하고는 한다. 유들유들하게 늘 웃는 낯이면서도 등골이 오싹하도록 미소에 질책을 담을 줄 아는 남자였다. 뼈가 있는 낱말들에 움찔하며 저지되곤 하는 보쿠토의 허무맹랑한 욕망들은 그래서인지 결국 기를 펴는 건 마찬가지로 침대 위인 것이다.
난잡함과 끈적함이 뒤엉키는 침대 위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진작에 웃으며 일침을 놓았을 쿠로오가 목 뒤에 입술을 대도 헐떡임에 숨을 삼키며 하려던 말의 반도 잇지 못한다. 보쿠토의 안, 맹금류의 본능이 이런 식의 상하관계에 흥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날개를 펴고 그의 피식자에 대한 소유를 한껏 주장하며 이를 박아넣는 다. 목 뒤, 긴팔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잇자국이 진해지는 것에 쿠로오가 뱉으려던 질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감행한다는 사실은 쿠로오의 머릿속에서도 이해되고 있는지라, 울음으로 끊기는 와중에도 버릇이 나쁘다는 면박을 간신히 뱉어냈다.
목 뒤에 닿은 보쿠토의 입술과,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느껴졌고,
그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의 못된 버릇이었다. 그는 제가 우위를 점하는 그 순간에 도취하여 제 소유욕을 그 몸에 온통 새겨놓는 것을 즐겼다. 이를 박아넣어 깨물고, 잘근잘근 씹어 빨갛게 붓도록 몇번이고 반복적으로 물어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야 소중히 입술을 가져다 대면, 결국 다음날 온몸 가득 새빨간 잇자국을 달고 기상하는 건 쿠로오 쪽이었다. 버릇 나빠. 그 버릇에 언제나 협조적이지 않았던 쿠로오의 평은 오직 한 마디였지만, 침대 위의 상하관계에 뒤엉켜버린 뒤부터 그는 보쿠토의 아래에 있을 때만은 어떠한 불만도 토해내지 못했다.
하이스피드 게임인 배구에서 쉼 없이 이어지는 랠리에 지치는 것은 당연하기에, 코트 위에 매인 자들은 모두 평균 이상의 스태미너를 가졌다. 쿠로오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문제는 당연하게도 예외가 되지 못한 보쿠토에 있다.
한참을 시달리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더이상 뽑아 낼 눈물조차 마르곤 한다. 에이스의 저력이라는 게 이런 거야? 모르겠다는 표정의 보쿠토는 더이상 지칠 수 없을 만큼의 자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어쩐지 드는 묘한 상대적 박탈감을 쿠로오는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등이나 뒷목, 어깨를 완전히 스케치북으로 만들어 망쳐놓는 게 인생의 낙이라도 되는 듯한 부엉이는 체력의 배분 따위는 생각도 않고 처음부터 쿠로오를 엎어두곤 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간신히 세우고 떨며 벅찬 행위에 기어코 고개를 저으면 시트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눈물이었다. 결국 제 눈물에 얼룩져 축축한 시트 위에 고개를 쳐박을 확률이 거의 9할을 넘는 상황들에 질린 쿠로오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힘들다고 울면 그제서야 보쿠토는 그를 바로 눕혔다. 이미 새빨갛게 수 놓인 등쪽이 갈증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쿠로오가 맹신하는 이유는 힘이 풀려 쉬지 못한 숨을 몰아쉬는 그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쇄골께로 직행하는 보쿠토의 입술에 있다.
쿠로오는 질린다는 듯 보쿠토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좀 떨어지라는 뜻이 백번은 반영된 행동이나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결국 땀에 젖은 목덜미로 단단한 손끝이 더듬어져 내려가고, 다른 손은 꽤 절박한 연인처럼 상대의 등을 부둥켜 안는다. 습관적인 포옹은 늘 이어져 온 관행과도 같았다. 아직은 희었던 쇄골에 붉은 꽃이 핀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육식동물에 쿠로오가 끊어질 듯 신음했다.
배구공에 맞아 혹여라도 상처를 입지 않도록 손톱이 짧게 깎인 손끝과, 쾌감을 이기지 못한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쿠로오 테츠로의 버릇은 아주 상습적이었다. 그렇게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에도 보쿠토였지만, 그 쿠로오가 견디지 못해 울며 매달리도록 만들 수 있는 건 단 한명 뿐일 수 밖에 없었다. 끝까지 몰아붙이는 보쿠토의 아래에서, 쿠로오는 습관적으로 움켜쥔 그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짧은 손톱으로 쥐어뜯듯 몸부림치며 밤새, 밤새도록.
스파이커와 리시버는 오늘도 서로에 의한 상처에 온 몸이 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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