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쿠로] 각인

HQ

2016. 5. 21. 22:58

​* 쿠로른 전력 60분, 타투.
​** 리에쿠로 요소 있음






아, 이건 좀 위험하다.
잉크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인 공간, 커튼 뒤에서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원색적이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겼다. 퇴폐적이다, 라는 단어가 어딘가에 꼭 맞아야한다면 여기가 아닐까. 이유없이 치닫는 경계심은 어쩌면 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눈매, 혹은 짙고 어두운 눈동자에서 피어나는 듯 했다. 아플걸? 묘하게 먼저 말을 놓는 남자는 낮고 맴도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뭐랄까, 끈적끈적하고... 달라붙는 느낌. 쿠로오 테츠로는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들었던 시선에 꿰뚫리는 듯한 착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깊은 눈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 고나리질이라도 하겠단 겁니까? 나 손님인데. 삐딱하게 입꼬리만을 올려 웃는 미소는 평소와 같았지만 대사에서는 평균 이상의 날카로움이 배었다. 남자, 타투이스트 마츠카와 잇세이는 그저 여유롭게 알콜 솜으로 보기만 해도 날카로운 바늘을 갈무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리가. 그 짧은 대답이 어째서 그렇게 신경쓰였는지.

실은 그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반응이 과민하며, 그게 마치 육식동물을 앞에 둔 피식자의 자기보호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걸.



말이 없는 그의 앞에 앉아서, 쿠로오 테츠로는 그저 다리를 벌렸다.




"남자친구지?"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 아주 착각만은 아니었는지 땀에 젖어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넘기던 쿠로오는 순간 당황에 말끝을 흐렸다. 근육이 탄탄한 허벅지에 볼펜과 펜으로 거칠게 그려진 사자의 형상이 꼭 겹쳐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는 건 사실이기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어물어물 말을 넘긴다. 드로즈 하나만을 걸친 채 다리를 벌리고 받을 사자 모양의 타투가 허벅지 안쪽을 온통 검게 물들일 것이라는 것도 다 그 육식동물 하나에서 시작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건장한 187cm 남자에게 타투 하나만을 두고 남자친구냐 넘겨 묻는 마츠카와는 아주 직설적이라 더 무례했고, 동시에 위험했다. 정확히 짚은 모양이네, 마츠카와가 다시 바늘을 들고 그 끝으로 피부를 찔러 헤집기 시작하자 쿠로오는 다시 눈을 감았다.



쿠로오는 그의 옆자리에 사자 새끼 한마리를 키운다.

버릇이 나쁜 사자는 늘 앞발로 그를 짓누르고 자신이 마치 진짜 육식동물이라는 듯 숨통을 죄며 이를 박아넣곤 했다. 언제나 포식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모르겠지만, 오늘 까지도 허벅지 안쪽에는 그가 물어뜯은 붉은 자국이 여전히 희미하게 존재했다. 허벅지를 꽉 쥐고 억지로 벌리던 손자국은 지워졌어도, 정신없는 틈을 타 이로 꽉 물었던 자국이나 활짝 열린 안쪽을 마구잡이로 헤집으며 낮게 뱉던 속삭임들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것이다.

"쿠로상, 허벅지 너무 예민한데. 내 거라고 자국 새기고 싶어여."

하이바 리에프는 정말이지 버릇이 나빴다. 새벽이 깊으면 머리꼭대기까지 기어올라 온 몸을 옭아 매 속박하며 맨 허벅지에 영원히 나를 새기고 싶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뱉었다. 타래에 얽혀 서로를 속박하는 느낌과, 타인에게 귀속되는 느낌. 쿠로오 테츠로는 정말이지 그런 추상적이고도 치기 어린 일차적 로맨스에 약했던 것 뿐이었으며, 결국 아가리를 벌린 사자는 한마리가 더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더운 숨이 터져 나와 안그래도 어둡고 좁은 둘의 사이에는 후끈한 공기가 맴돌았다. 윽. 이를 너무 악물어 두통이 울린다. 무의식 중에 짓씹어 붉어진 입술에서 기어코 생채기가 났다. 배어나오는 핏방울을 애써 침착하게 핥아내면 마츠카와가 바늘을 닦으며 픽 웃는 것이 보였다. 경각심이라도 일깨워주겠다는 듯 위험하게 지어보이는 그 미소가 고의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확실하지는 않다만 정말이지 기분이 묘하게, 아무튼 발끈하게 만든다고 할까. 쿠로오는 마츠카와가 건네 주어 목에 걸치고 있었던 타올을 끌어 땀을 훔쳐냈다. 희고 몽글몽글한 타올에서 상대의 체향이 느껴졌다. 태연하게 다시 원래대로 손을 내리려했으나 날카롭게 찔러 표면을 긁어놓는 감각에 쿠로오는 결국 천조각을 입에 물었다.

"장난 아니네."

남의 허벅지 안 쪽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며 뱉는다는 말에 쿠로오는 이미 새빨갛게 변했을 귀에서 다시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표정을 구기며 수건을 문 입 안쪽으로 목을 울리지만 마츠카와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땀 한땀 검은 잉크를 박아넣는 중이었다. 뭐가 장난 아니라는 건지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시선은 바늘 끝에 고정한 채로 뱉는 혼잣말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중얼거림이 오직 쿠로오에게만 똑바로 꽂혀 들려왔다. 이 너무 꽉 물면 머리 아프다고, 불과 한 시간 전 들었던 말을 십분 이해한지는 한참이 되었지만 지금 두통의 원인이 불분명한 것은 이를 악물어서인지 열이 올라서인지가 분간이 가지 않아서였다. 입 안에 맴도는 더운 기운에 물었던 타올이 뜨겁게 젖었다. 아. 허벅지 안쪽 어딘가를 따끔하고도 날카롭게 찔러오는 감각에 흠칫 놀라 결국은 끄트머리가 젖은 수건을 놓쳐버린다.


그는 다시 픽 웃었다.
진짜 장난 아니네.


쿠로오는 헐떡이며 한 손으로 눈을 덮었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어지럽다. 이를 물어서? 그건 쿠로오의 절박함이 아픔에서 오고있지 않다는 것과 같은 원리로 사실이 아니었다. 움찔움찔 떠는 몸을 진정시키려 구겨질 때까지 쥐어잡은 것은 앉은 자리의 얇은 시트와, 수건, 그의 옷깃. 머리가 어지러운 이유는 순전히 열이었다.

섹스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사람을 감아 끌어내릴줄 아는 사람이었다. 완전히 물들어 잠식당하는 듯한 기분에 결국 흐느끼듯 눈을 감으며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너무 약한 것 아니냐며, 이번에도 제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속삭임에 쿠로오가 몸을 떨었다. 바늘의 끝은 아주 작고 날카로워 간질간질 하다가도 치명적이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마저 모두 느껴져 쿠로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울음을 터뜨렸다.




"예민하단 소리 자주 듣지?"

마츠카와 잇세이, 타투이스트. 쿠로오의 손에 그의 명함이 쥐어졌다. 새빨개진 허벅지에는 눈을 빛내는 사자 한마리와 목덜미에는 수건에 배어있던 상대의 체취. 허벅지와 다름없이 붉게 달은 머리에는 뇌리에 박힌 강렬한 열이 존재했다. 또 오세요. 그제서야 높인 말을 뱉어 준 그에게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항력.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