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쿠로] 가장 불손한 결박

* 멍뎅(@kurooguel)님 생일 축하드리는 글 - 수갑, 경찰
** 욕망 주의. 수갑플, 행위 묘사 있습니다.





한 줄 접힌 주름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잘 다려진 셔츠가 몸에 꼭 맞았다. 끝까지 깔끔하게 잠긴 단추와, 똑바로 매인 넥타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달린 경찰배지가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그를 한 없이 단정하게 했다.

아카아시 케이지, 도쿄지부 경찰서 경위.





쿠로오 테츠로는 그 이름 뿐만 아니라 머리칼과 눈매에서 검을 흑이라는 한자와 잘 어울렸다. 새카만 먹빛 머리칼은 늘 뻗쳐있지만 묘하게 쓰다듬기를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부드러움이 있었고, 빨려들어갈 듯한 눈빛은 솔직하게 결코 순하지 않지만 깊은 매력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누가 보아도 사납지만 아카아시 케이지는 이 사나운 검은 고양이에게 각별했다.

"오야, 이게 누구야. 너무 본지 오래돼서 까먹은 것 같은데."

"그러면서 마중 나오셨잖습니까."

도도하게 꼬리를 빳빳이 세운 태도로 현관 앞까지 쪼르르 달려나와 봤자 아무리 삐진 척 해도 신빙성은 없다. 금세 당황해 애써 침착하게 누가, 하는 쿠로오는 이미 귀 끝이 붉었다. 아카아시는 구두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낸다. 눈매가 날카로워 야생동물 같은 이 남자는 늘 느끼지만 이런 식으로 표정이라도 굳히면 정말 사나워 보인다. 그래봤자 거의 일주일 간 이어진 야근 행진에 도통 보지 못한 얼굴이 아쉬워 부리는 작은 심술임을 알기에 그저 귀엽지만.

보고 싶었습니까? 작게 속삭이며 아카아시가 그의 옷깃을 잡아채 벽으로 밀었다.

"가만히 계세요."

아카아시 케이지는 단정하게 생겼으나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고, 그것 보다도 큰 키가 쿠로오 테츠로였다. 삐지긴 누가 삐졌냐며 나이나 덩치에 맞지 않게 버티던 건 언제고, 결국 스스로 '나 아직 삐진 거 안 풀렸으니까 놓으라' 자백하며 버둥대는 쿠로오는 187cm. 악력으로 치자면 아카아시가 우위인 탓에 늘 힘으로 져버리는 쿠로오였지만 그 길이는 꽤 버거웠고, 마침 아카아시의 소지품 중에는 흥미로운 물건이 하나 있었더랬다.

금방 몸으로 풀어드릴게요.
찰칵, 수갑이 쿠로오의 손목을 결박했다.





쿠로오는 지금 어이가 없어 미치고 팔짝 뛸 심정이었다.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얄쌍한 선이기는 하나 완전히 금욕적으로 생겨먹은 주제에 이런 변태플레이라니.

"어이,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풀어주세요. 네?"

차가운 금속이 손목을 휘감는 감촉에 얼이 빠진 쿠로오가 눈매에 힘을 주는 것도 잊고 끔뻑이며 그대로 휘말려버린 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눈을 뜨자 침대 위에서 제복남에게 옷이 벗겨지고 있는, 야동에서나 등장하는 클리셰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뭔데 이게? 셔츠는 벗겨지지 않아 앞섬만 가득 풀어헤쳐진 채였다. 아카아시, 얼굴이랑 어울리는 행동 해야하는 거 아니냐. 대놓고 욕정을 표하면서도 여전히 단정한 얼굴이 얄밉기 짝이 없었다. 뭐하는 놈이야 저거. 정작 아카아시는 평이한 어조로 가만히 계시란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쿠로오는 그대로 한 살 연하의 연인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아랫도리를 벗겨져 엉덩이를 내놓고야 말았다. 이거 진짜 쪽팔린 거 알기나 하려나, 하지 말라며 소리를 아득바득 지르고 버둥여 봤자 정말 생긴대로 안 노는 아카아시는 악력으로 모든 걸 잡아눌렀다. 그 힘이 어마어마해 한탕 뒹굴고나면 허벅지나 발목, 골반 등등에 손가락을 닮은 멍자국이 가득 남는 걸 납득해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른 남자였다. 척 보기에 금욕적인지라 침대 위에서 정중한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대체 왜 그렇게 집요하냐고 물으면 그는 '쿠로오 씨가 야한 탓'이라며 태연하게 큰일 날 책임 전가를 시전하는 뻔뻔함마저 있었다. 모범적인 외양으로 고평가받는 아카아시를 볼 때마다 환장하기 직전인 건 쿠로오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엘리트의 정석임을 부정할 수 없는 스물 둘의 경위가 제 안의 배덕함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게 쿠로오 위 뿐인 탓이다. 덕분에 밤새 스태미너의 고갈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시달려 온 몸에 피곤과 울혈자국, 정액 따위를 덕지덕지 몰아붙이고 일어나 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없음. 아픈 허리에 뱉어내는 폭풍같은 불평에도 아카아시는 늘 태연했고, 그때마다 속이 끓고 열불이 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절차를 아마 오늘도 밟을 예정인 모양이었고.

"아, 미쳤... 제대로, 제대로 풀어. 너! 야, 아카아..."

흑. 시트가 파삭 구겨지도록 힘을 주어 잡으며 쿠로오가 이를 악물었다. 자연스레 목에 핏대가 서는 것에 아카아시가 입을 맞춘다. 미쳤지, 미쳤어. 엘리트 남자친구의 야근행진이 매우, 무척, 극단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었던 건 맞다만 결과가 이렇다면 자신이 백번 잘못했다. 아카아시가 멀끔하다 뿐이지 가끔 상식을 뛰어 넘는다는 것을 잊었다. 오래 못 본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도 마찬가지이며, 그가 정확히 말했을 때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태연히 해내는 인간이라는 걸 좀 더 명심했었어야 했는데. 몇번 풀어주지도 않고 그저 힘으로 누르더니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다. 발버둥치기에 수갑의 행동반경 제약은 체감하기에 장난이 아니었다. 제대로 버둥대지 못하고 꼼짝없이 붙들려 얼마 되지도 않은 짧은 전희에 적응할 새도 없이 꿰뚫려버린 것이다. 쿠로오는 숨을 삼켰다. 헛숨을 한 입가득 들이킨 채 눈 앞이 아찔해 지는 것을 참아야했다. 존나 아파. 아카아시가 뒷목에 키스하는 듯 말랑한 온기가 내려앉는다. 오랜만이죠, 기다렸잖아. 밤새 해드리겠습니다.

쿠로오는 허리를 둥글게 말고 결국 깨물었던 입술을 벌린 채 타액을 뚝뚝 흘렸다. 저건 볼 수록 미친 새끼일 때가 너무 많았다.



오늘 아카아시의 귀가 시각은 꼭 열한시 언저리였다. 평소와 비교하면 개과천선하고 이른 시각이었으나 쿠로오는 그마저도 매우 불만이었다. 그리고 아카아시가 그가 품은 불만의 꼭 두배만큼 욕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흐으, 아... 죽을, 죽을 것. 그만. 힉!"

그냥 딱 죽을 것 같았다고 하자.

구겨쥔 시트는 쥐어뜯어 찢겨 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잡는다기 보다는 간신히 붙들고 버틴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 살 차이가 별 것도 아닐텐데 지나치게 절륜한 제 연인은 사람 손목에 무자비한 쇠붙이를 채워놓고 나 몰라라 식이다. 정말 복장이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흐릿한 시야에서도 보이는 제 손목이 붉었다. 그 몸에 내 자국을 남기는 게 좋습니다, 라는 헛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 물릴 지경이었지만 한번 뒹굴어도 어디서 구른 것 마냥 얼룩덜룩해지는 몸뚱이는 제발 자제해달라 사정하고 싶었다. 잇자국, 손자국으로 모자라 수갑을 찬 자국이라니. 초여름인 요즘같은 때에 더위를 타고 운동을 하는 쿠로오에게 반팔 티셔츠의 박탈을 알리는 변태적 취향이었다. 이 순간 만큼은 그가 경찰서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죽도록 싫었다.

자국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스태미너의 변화조차 보이고 있지 않는데, 쿠로오는 그 아래에서 늘 그렇듯 딱 죽기 직전이었다. 배 안쪽이 저리도록 사정없이 휘둘리는 것은 당해보지 않고서야 아마 모를 것이다. 이미 몇번이고 가버렸는지 허벅지 사이가 축축했지만 단단한 손아귀에 잡혀 다리도 오므리지 못하게 되었다. 절정을 맞아 전율하면 잠시 멈춰주는 배려는 커녕 더 조이는 것에 흥분하여 밀어붙이는 침대위에서 폭력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시달리느라 목이 다 쉬는 쪽이었고. 안타까운 일이다. 쿠로오는 이미 몇번 째 되풀이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죽을 것 같다'. 한 문장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신히 인지해내고 비참해졌다. 내가 왜, 어쩌다 이런 애한테.

수갑의 단단한 면이 손목을 자꾸 파고들었다. 새빨간 줄이 아무렇게나 서너개 씩 손목에 새겨진다. 이미 잔뜩 헐떡이는 중이었지만 전립선만을 건드려지는 통에 제정신을 못차리자 수갑이 손목을 더 짓눌러 결국 생채기가 났다. 따끔한 감각에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지만 그럴수록 빨라지는 템포는, 제발 거짓말이기를 바란다. 귓가를 파고드는 아카아시 특유의 평이한 어조가 점점 흐려져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봐야 그 단정한 목소리로 음담패설 따위 뱉어내고 있을 게 뻔해 쿠로오는 울음을 삼키고 몸을 움츠렸다. 속박당한 움직임과 피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그대로 작렬하는 쾌감이,

죽을 것 같다.





"죽어."

쿠로오는 땀에 젖고 흐트러져 드물게 내려앉은 머리칼이 눈을 찔러 결국 피곤에 절은 눈꺼풀을 꾹 눌러 닫았다. 죽어, 죽어, 죽어. 기어코 핏방울이 배어날 때까지 헤진 손목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중인 아카아시에게 하는 말이었다.

"많이 나갔네요."

"걱정마시지, 허리가 더 하니까."

엉덩이가 아니고요?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아카아시에 쿠로오는 사레가 들릴 뻔 했는지 켁, 하며 눈을 부라렸다. 너 진짜! 곧바로 농담이라며 넘기는 게 죽도록 얄미운 이유는 놀랍도록 차분한 그 어조가 한 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카아시는 약이라도 발라주겠다며 쿠로오의 손목을 모아쥐었다. 수갑의 가운데, 잠금장치 쯤으로 보이는 것을 누르는데,


찰칵하고, ...풀렸다?


풀렸다고? 쿠로오는 허리가 나간 것도 잊고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것도 한 순간, 곧 악소리와 함께 고꾸라져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한동안 꼼짝을 못했지만, 그가 느낀 충격이 전해지기는 충분했다. 정작 아카아시는 약을 가져오겠다며 침대를 비웠고, 열쇠 하나 없이 허무하게 열려버린 수갑은 아가리를 벌린 채 정액으로 젖고 구겨진 시트 위를 뒹굴고 있었다. 뭔데, 뭔데 씨발. 거의 현실을 도피하듯 실의에 빠진 쿠로오를 대변하듯 텅 빈 수갑 안이 휑하다.

"이거, 열쇠 없이도 열리는 거였어?"

"장난감인데요."

뭐? 낯이 창백해진 쿠로오의 머릿속을 지독히도 시달렸던 지난 밤이 스쳐지났다. 하다못해 아카아시의 목이라도 감아 안으려 팔을 뻗어도 잡지 못하고 갈 곳 잃은 채 방황하던 손과,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실컷 흔들리느라 감각을 잃은 허리.

"서에서 쓰는 걸 가져다 쓰다가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아니, 가져다 쓴 건 네 놈이잖아. 결국 그렇게 써 먹을 작정으로 꼭 진짜같은 장난감까지 준비한 미친놈이라는 게 증명된 지금 이 순간. 억울해, 억울해 미치겠다고. 패닉에 빠진 쿠로오의 손목을 아카아시가 부드럽게 잡아 올렸다. 제가 진짜 수갑이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없다는 걸 아니까 억울한 거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실컷 속을 긁는다. 되직한 연고가 환부 위를 덮었다. 둔감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상처도, 머릿속도.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런 쿠로오를 보며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끝내주게 야했으니 된 것 같네요, 만약 쿠로오가 들었다면 당장에 멱살이라도 틀어쥐었을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