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로리에] 미제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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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5. 21:46

​* 렉님 (@rekinq12)과 한 2인 합작입니다 상편은 밑의 링크에서 봐주세요. 상편 비밀번호는 렉님 트위터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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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하거나 외설스러운 묘사가 있습니다.






이 저급한 난장판에서 쿠로오는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날개만 펴 사뿐히 꼭대기에 내려 앉으면 모두가 기꺼이 그 발 아래를 기었다. 여왕이 발끝을 내리는 그야말로 '정점.' 기어오르려면 추락할 각오가 아니라, 결심을 하고 올라야 하는 곳. 하이바 리에프는 굶주린 입맛을 다셨다.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고 미는 대로 떨어질 부엉이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어린 사자는 발톱을 갈았다. 곧 찍어 누르고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을 상상하며 황홀하게 눈을 감는다.

그날 밤, 하이바 리에프는 발톱을 세우고 쿠로오의 꼬리를 잡는 꿈을 꾸었다. 그가 잡아 찢어놓고 있는 것이 스스로의 죄의식임을 자각한 자각몽이었다.

빌어먹게 울어대는 그의 숨통을 조르며 속삭였다. 이래도 내가 짐승새끼가 아니야?





결국 다 똑같은 새끼지, 같은 쓰레기 주제에 쓰레기를 가린다는 말은 이미 서너번은 들어서 재미가 없었다. 하나같이 쓰레기였고, 하나같이 구역질 나는 인간들이라고. 또 하나의 쓰레기가 그들을 평가했다. 약자를 탐식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들의 저급한 정복욕, 과시욕, 탐욕. 리에프는 멍청이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색욕에게 시선을 꽂았다. 부드러운 곡선이라곤 없는 몸에서 삐딱하고 요염하게 걸린 미소가 야하게 굶주린 그를 도발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몸을 파는 년이야.

아니, 쿠로오 테츠로는 여기서 유일하게 군림할 줄 아는 년이었다. 몸을 파는 것과는 다르다. 결국 엉덩이를 대는 건 하나고, 난잡하게 굴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자신이 가장 천박해 보일 길을 찾아내 스스럼없이 열어보인다. 알 수록 좆같은 년이네여. 세탁실로 들고 갈 옷더미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아직도 거기 가냐?
리에프는 비웃음에 침묵으로 답했다. 못 갈 이유가 어디 있는데.



이른 시각부터 강제로 끌려나와 같잖은 아침햇살 따위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머리통들을 보고 있자면, 아카아시 케이지는 건조한 눈빛에서 드러나는 혐오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곤 했다. 사내 새끼들이 성욕을 못이겨 저들끼리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붙어먹는 광경은 이 곳에서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또 결코 깨끗한 일도 아니었다. 잦다고 합리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엮이기도 싫다는 듯한 말투로 언제나 무관심으로 일조하는 아카아시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깨끗한 남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커먼 남자들만 득실대는 이 소굴에서는 살이 조금만 희거나 허리가 조금만 얇아도 더럽게 엉겨붙는 성욕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아카아시는 목이 길어 끝까지 채워입은 제복 탓이 아니더라도 단연 그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의 제복이 칼같은 각을 세워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일주일 중 여덟번이며, 단 한번도 타인의 손에 단추가 뜯겨본 적이 없는 이유는 늘 그의 허리춤에 상주하는 리볼버에 있었다.

양심을 팔거나, 인간성을 팔거나, 몸을 팔거나.
그 가운데에서 아카아시 케이지는 징역수들에게 어울리는 꼴사나운 최후를 팔았다.

"제가 구멍낸 머리통이 몇개인지는 아세요?"

결국 같은 바닥에서 구르는 놈들은 거기서 거기라고,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세 보 안까지만 들어와도 망설임없이 유혈사태를 낸다. 내가 왜 인권없는 새끼들에게 도덕을 지켜야하냐며 차게 비웃으면, 방금 눈을 까뒤집고 황천길로 떠난 고깃덩이의 친구였던 자들은 굳이 최후에서조차 가장 졸렬한 길을 택하는 이유가 뭐냐고 낄낄대는 것이다.

사형수들은 매일 아침 아카아시 케이지의 워커 굽소리에 빌빌 기었다. 독방들이 죽 늘어선 사형수들의 문앞을 지나쳐 결국 희생자 하나를 끌어내면, 쓰레기들이 주제에 살고싶다는 집착과 욕망에 잠식당해 덜덜 떠는 한심한 광경을 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복도 저 끝에서 울부짖는 삶에 대한 마지막 집착에 혐오 그 이상을 느끼지 않으며, 망설임 없이 귀를 닫을 줄 안다는 것이 아카아시가 쿠로오와 함께 독방의 관리를 맡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리에프가 아카아시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주로 늦은 새벽 다리를 벌리는 쿠로오를 침묵할 때 뿐이었다. 진절머리 나여? 당돌하게 목소리를 낮춰 물으면 언제나와 다름 없이 딱히, 라는 건조한 답만이 돌아왔다. 그럴 땐 질문의 방향을 살짝 틀면,

"끝났으면 좋겠어여?"

"네."

생략된 주어에 한 치 의심을 품지않고 그는 긍정을 표했다. 확실히 그냥 견디고 있는 거죠. 리에프는 아카아시가 이 바닥에서 뭘 파는지 아는 몇 안되는 놈이었다. 견디는 건 엿새가 닷새가 되면 좋고, 닷새가 나흘이 되면 좋잖아. 근데 나는 나흘을 사흘로 만들어 줄 수 있어여. 리에프는 그 문장으로 아카아시에게 탄창이 하나 남은 리볼버를 샀다.

"너무 어린 것 아닙니까?"

명백한 비웃음의 의도는 불분명했다. 저도 살인죄였는데, 이런 거 넘기는 그쪽은여. 아카아시는 말없이 밝아오는 새벽해에 등을 돌렸다. 그 년한테 홀린 새끼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 쯤은 알고 있어야 독방 키 잡습니다. 허리 춤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들며 사형수들에게 향하는 좁고 긴 복도를 걷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리에프는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무조건 머리 꼭대기의 꼭대기야. 그 위에서 나는 수리를 따라잡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누군가 했던 말을 간신히 기억해낸 리에프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손에 들었던 권총을 품 안에 감춘 후였다.

리에프는 묘한 승리감에 젖었다. 이래서 어린 애들이 피곤하다는 말을 네번째 듣는데도 웃어넘기며, 그는 다음날도 퀴퀴한 천꾸러미를 들고 세탁실을 향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결코 죄수들의 욕정따위에 제 옷깃을 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먹이사슬 가장 꼭대기에 선 여왕의 먹잇감이 무너지길 바라는 이유가 뭘까. 엿새를 사흘로, 그래봤자 리에프에게 보이는 것은 하나였다.


보쿠토 코타로의 사형까지 남은 시간, 닷새.





밀회의 배경은 바뀌는 법이 없다. 불꽃에 달려드는 나방들을 구태여 막으려 드는 사람이 없듯이, 리에프가 늘 독방 쪽 좁은 복도를 걷는 것을 굳이 피곤하게 막으려 드는 사람 또한 없었다. 쿠로오는 대체로 모두 벗어내는 것보다 흐트러진 제복을 몸에 대충 걸친 채 제복의 단정함과 천박하게 연출된 상황의 모순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늘 문 쪽을 향해 벌린 다리는 가려진 것 없이 적나라하다. 곱게도 접는 눈꼬리에는 언제나 눈물이 맺혀 있었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싸구려 조명 아래에서 번들거리며 빛났다. 눈물과 타액에 젖은 얼굴만 간신히 비춰내는 어두운 독방 안에서 부엉이의 금빛 눈은 섬뜩하게 빛나곤 했다. 굳이 엿보고 있음을 숨기려들지 않는 사자 새끼와 눈이 마주치면 헤에, 하고 흥미를 보이면서도 곧 쿠로오의 허벅지를 잡아 벌려 난장판으로 젖은 접합부의 천박함을 보였다.

"왜, 누가 보니까 더 흥분하기라도 한 거야?"

오늘은 더 조이네, 쿠로오. 커다란 날개는 검은 꼬리가 휘감겨 있음에도 비좁은 공간을 덮고 쭉 뻗어 그들을 가둔다. 그런 부엉이의 영역표시에 진절머리가 났다.

관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독방과 같은 날개 아래에서, 모든 인형극은 움직이고 있었다. 리에프는 벽에 붙은 포스터 뒤 때 낀 시멘트의 틈에서 기어코 리볼버를 꺼내들었고, 좁은 복도에서 마주친 아카아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미한 것은 달빛, 아카아시 케이지의 워커 굽소리, 저 앞 틈새가 열린 독방에서 흘러나오는 암캐의 울음 소리. 원초적 울부짖음에 뒤엉킬 생각으로 리에프는 문을 연다.

새벽이 주는 정적은 공간안에서 멎은지 오래였다. 오늘은 희미하게나마 필라멘트를 태우던 싸구려 전구가 꺼져있었다. 오로지 동물적 감각으로 엉겨붙어 뒹구는 그들을 열린 문에서 기어들어온 달빛이 비췄다. 좁은 방 안은 습하다. 젖은 소리가 울리고, 발정 난 고양이가 야하게 울었다. 짐승 새끼는 그 위를 덮쳐 그를 누르고, 제 멋대로 범했다. 애처롭게 허리를 휘어대는 쿠로오가 반쯤 정신을 놓은 것은 사흘이라는 시간을 진 탓에 무거워진 날개로 거칠게 으르렁대는 부엉이의 탓이었다. 리에프는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리볼버의 탄창은 여전히 하나.





"끝났어여?"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는 짐승 하나가 군림했고, 그 목을 조르며 어깨 위에 여왕이 올라타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쿠로오를 무너뜨리고 정신없이 울리는 보쿠토는 분명 완전한 짐승이었으며, 그 포식을 목격한 리에프는 군침을 삼켰다. 행위의 막바지에서 목을 졸리며 질질 흘리던 쿠로오는 여즉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개를 쳐박은 채 몸을 떨었다. 모든 육식동물은 정복욕에 휩싸여 더 위를 갈망한다. 리에프는 보쿠토에게 안전장치를 푼 리볼버의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사형수에게 남은 여생이 세시간인 것과 사흘인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미친놈일 수록 그 차이는 미세했다. 보쿠토는 타액을 뚝뚝 흘리는 쿠로오의 새빨갛게 손자국이 남은 엉덩이 사이에서 제 것을 꺼내면서도 이 쪽을 한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마 그럴걸. 웃는 낯으로 쿠로오에게 정신 차리라 속삭이는 보쿠토는 마치 제가 그의 연인이라도 된다는 양 굴었다. 리에프는 가슴속에서 응어리지던 미칠듯한 소유욕과 욕망의 정체를 깨달았다.


열등감.
그리고 그것은 굶주린 그가 기어코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쿠로오, 너무 천박하게 굴지 말라고 했잖아. 안달났어? 오늘 왜그래?"

틱, 힘없이 떨어져나온 빈 탄창은 애초에 비어있었다는 것처럼 한 없이 가벼웠다. 헤이 헤이, 너무 얼빠진 표정 하지 말라고. 보쿠토는 잡아 벌려진 쿠로오의 허벅지로 지난 일주일 간 수없이 봐야했던 난잡한 광경을 다시 연출한다. 정액에 희게 젖은 그 구멍에 리에프가 새삼 미간을 찌푸렸고, 보쿠토는 손자국과 멍으로 뒤덮인 그의 허리를 더듬었다.

어차피 다음은 너니까.

짐승새끼의 최후는 결국 꼴 사납지 않았다. 제 관자놀이에 대고 쿠로오 테츠로의 리볼버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까지 맹금류의 눈빛은 명백한 승리자의 그것이었다. 똑똑히 각인하라는 듯, 요야하게 올라간 쿠로오의 주홍색 입꼬리와 붉게 물드는 보쿠토의 금색 눈동자는 리에프의 숨을 멈췄다. 어리네, 그제서야 쾌감에 헐떡이는 것을 멈춘 쿠로오의 비웃음이 뇌리에 박혔다.


아카아시 케이지의 제복 깃은 결코 타인에 의해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다만 스스로가 열어 젖히는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 사형수의 앞이었다.
꼴사나운 최후를 파는 것도 사람을 가려 파는 사람이었다. 머리 꼭대기의 꼭대기에서 나는 수리. 리에프는 그제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나는 어렸다.





XXXXXX번, 하이바 리에프. 사형.

교도관을 강간하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타 죄수를 살해하는 추가 범행을 저지름.

쿠로오의 꼿꼿한 허리가 결국 무너지는 새벽녘이면 독방의 문 바로 앞까지 아침 해가 비치곤 했다. 단지 그게 하루치 일조량의 전부라는 걸 알았더라도 리에프의 선택이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리에프의 최근 불만은 턱 없이 부족한 바깥세상의 빛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질 낮은 공연의 장소는 징그럽게도 한결같다. 아직 보쿠토가 한창 쏟아낸 비린내가 빠지지 않은 독방은 어두운 것도 모자라 퀴퀴했다. 볕이 들지 않을 거라면 낮 따위는 아무렇게나 지나가도 좋은데. 왜냐하면 그가 기다리는 건 오직,

"문 열어."

사형수에게만 대 준다는 그 년이 찾아오는 새카만 밤.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