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쿠로] 정점탈환

HQ

2016. 4. 28. 16:06

​* R-19 수위표현 주의.




흡. 쿠로오가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미 통제가 안되어 놓친 타액이 입술을 적시고 턱을 따라 흐르는 광경이 외설스럽다. 산소가 모자라. 결국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열어 혀를 빼문 채 할딱였다. 짐승처럼 침을 뚝뚝 흘리며 저릿한 주먹을 움켜쥔다.

그의 체벌방식은 지독히도 잔인했다. 늘 똑같은 눈으로 흥미 없다는 듯 세상을 대하면서, 쿠로오에게는 유독 깐깐했다. 쿠로, 오늘은 누구였어? 그 여자.

켄마. 
 
건조하게 울리는 게임기의 버튼 눌리는 소리에 맞춰 작은 디지털 음이 야살스러운 호흡에 잠식된 방 안을 채웠다. 헐떡이는 숨이 필터링 없이 그대로 내뱉어져 AV동영상이라도 재생해 둔 듯 시끄러울 지경이다. 제 멋대로 뻗친 머리칼이 축 늘어져 시야를 가린다.쿠로오는 초점이 흐릿한 눈을 들어 애처롭게 오버될 생각을 않는 게임에 원망 섞인 시선을 던졌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늘 한결같던 그 자세로 앉은 켄마의 염색한 머리끝이 늘어뜨려진 끝과, 게임기에 가려진 두 묘안 대신 바라볼 입술. 무감정하게 살짝 열린 채 어떤 명령의 표현도 않는 켄마의 그 입술이 쿠로오를 제한하는 가장 큰 족쇄였다. 방관자를 자처할 그 입꼬리가 두려워 쿠로오는 턱을 덜덜 떨면서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 아닌 침묵이 방 안을 짓눌렀다. 도립 네코마 고교 배구부 주장 쿠로오 테츠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소꿉친구이자 세터인 코즈메 켄마의 발끝 아래에서 무릎을 꿇는 구도상에 처해 있었다. 켄마의 무기력하고 작지만 명백한 명령조의 낱말들 앞에서, 쿠로오는 감히 반박같은 걸 할 생각을 않는 것이다. 쿠로, 멋대로 가면 안돼. 알지? 잔인하리만치 조용한 단호함에 뒤섞이는 게임음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머릿 속을 헤집는다. 쿠로오는 턱을 덜덜 떨며 애써, 눈을 꽉 감고 고개를 느릿느릿 주억였다. 
 
무릎을 꿇은 채 찌르르 울리는 허리를 벌벌 떨었다. 안쪽의 예민한 내벽이 움찔 떨리며 기구를 꽉 문다. 그러면 또 해일 처럼 덮쳐오는 쾌감에 파도에 신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다. 도리질 치며 잡히는 시트를 쥐어뜯는다. 그만해달라는 말은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쿠로오는 힘겹게 넘어가는 숨을 꼴깍대며 조금이라도 지나친 쾌감에서 벗어나고자 엉덩이를 들었다. 
 
켄마, 켄마. 
 
허락 된 이름은 단 하나였다. 카페에서 마주했던 가슴이 크고 염색을 한 생머리 여자애의 이름은 애초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지만 이 순간 자의든, 타의든 기억해내어선 안되는 이름이다. 켄마는 언제나 이렇게 쿠로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그를 멋대로 휘두르곤 했다. 쿠로오가 그의 말에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다는 걸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딸각, 하는 버튼음이 이번에는 게임기의 그것이 아니다. 아랫배를 버겁게 채운 장난감에게 무슨 자비를 바라겠냐만은, 버거운 자극을 간신히 견뎌내던 쿠로오에게는 지나친 비약이었다. 지잉,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구가 아랫배를 저릿하게 만들며 가차없이 내벽을 후벼판다. 본능적으로 뒤를 조이는 법을 아는 쿠로오의 몸이 제 스스로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높이 울릴 수록 입꼬리가 올라갔다. 코즈메 켄마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상의 정석이었다. 쿠로오같은 남고생과 늘 붙어다니는 탓도 있지만 객관적인 왜소함을 뛰어넘는 건 그 안에 도사리는 정복욕, 잘 벼려진 발톱. 게임기의 네모난 화면 속 캐릭터의 움직임이 점점 느릿해진다. 제 앞에 형편없이 무너져 덜덜 떠는 친애하는 친우는 티셔츠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쾌감을 견디려 허리를 떨고 엉덩이를 든다. 원초적임을 넘어 천박하기까지 한 이 광경을 켄마는 좋아했다. 싸구려 잡지의 연출된 섹스어필과는 견줄 수 없는, 나만의.

나만 볼 수 있는 정취.

블로킹의 사령탑, 이라는 게 쿠로오 테츠로의 평인 만큼 배구경기에서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한 경기에서도 수십번 블로킹을 뛰는 그는 경기복이 펄럭이는 걸 막기 위해 티셔츠 밑단을 바지 속으로 밀어넣지만, 그 밑에 감춰진 탄탄한 몸에 잔뜩 새겨진 수많은 붉은 자국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켄마는 둥글게 말린 쿠로오의 허리와 거기에 찍힌 제 잇자국들이 조명 아래 드러나는 모습을 사랑했다.

쿠로, 고개 들어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지 바르르 떨리는 두 팔로 간신히 시트를 짚고 몸을 일으키는 쿠로오의 얼굴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가늘고 긴 켄마의 손가락이 그 턱을 쥐어 올린다. 가볍게 얼굴을 적신 눈물에 입을 맞추고, 땀에 젖은 목덜미로 입술을 가져다댄다. 뾰족한 편인 송곳니가 오늘도 어깨를 꽉 깨물어 꿰뚫었다. 귓가에 그가 뱉는 더운숨과 녹아나는 쾌감의 잔여물, 옅은 한숨이 뒤엉켰다. 엉망으로 헤집히고 있는 탓인지 울음섞인 목울림이며 간헐적인 떨림이 가련하다. 정복욕과 소유욕의 완전한 충족. 그 꼭대기에 코즈메 켄마가 있다. 제 안에서 언제까지고 이렇게 겁에 질려 떨어준다면.


착하지, 쿠로. 그의 크지 않은 손이 땀에 젖어가는 머리칼 위에 놓일 때. 쿠로오는 비로소 용서를 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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