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단문 모음

HQ

2016. 6. 22. 04:21

​1. 진단 메이커 : 불면. 내 손을 놓지마, 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슬픈
​​

까칠한 손끝이 감겨 들 때면, 또 한계치를 넘어 연습한 게 분명했을 그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더 퍼부어줬어야 한다고 후회하곤 했다. 굳은살이 배기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전체적으로 살이 희고 부드러운 편인 오이카와의 경우에는 손만은 내가 그랬었냐는 듯 딱딱하게 굳어 단단했다. ​경기 중에 가장 공을 많이 만지는 것은 세터이다. 하지만 그 연습량을 고려했을 때, 오이카와 토오루는 세터가 아니었더라도 그랬을 게 분명하다. 물론 세터가 아닌 오이카와를 상상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와이즈미는 꽉 힘을 주어 잡아 오는 오이카와의 손을 마주 잡아 붙들었다. 그는 오늘도 꿈을 꾸었다.

이와이즈미는 건강하고 씩씩한 아들의 표본으로 자라며 잔병치레나 운동을 하면서도 큰 부상을 겪은 적이 극히 드물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주 낯설다─그는 요즘 앓고 있는 병이 있었다.



불면증. 밤이면 밤마다,
이와이즈미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이카와는 틈만 나면 침대로 기어올랐다. 누가 바닥에 내려가 잘 것이냐를 두고 언쟁하면 늘 이기는 쪽은 오이카와다. 부득불 자신이 내려가겠다며 우겨놓고는 새벽이면 슬그머니 침대로 올라와 이와이즈미의 옆자리를 채웠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시작한 게 아마 그 쯤이었다. 오이카와는 좁아지는 잠자리에 짜증을 부리는 이와이즈미에게 샐샐 웃으며 아양과 애교를 반쯤 섞어 양해를 구하다가도 금세,

잠식하는 꿈은 잔인하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꽉 잡혀 엉겨있던 손끝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지금이 몇시 쯤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에 빠졌다. 자다 깨어 졸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주제에 헤죽 웃으며 오른팔에 달라붙다가도 금세─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잠자리를 더듬어 손을 찾아내 꽈악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오늘도 꿈을 꾸었다, 그 꿈의 내용이 잔인하다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알고있다.


─미안해.

열에 복받친 고백을 거절하던 순간, 이와이즈미가 사과한 이유는 그를 거절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어서 미안해.


그는 오늘도 꿈을 꾸었다. 꿈 속의 자신은 현실과는 다르다. 허상 주제에. 그가 오이카와를 사랑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기분을 묘하게 한다. 그리고 그 꿈이 오이카와에게 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슬프다는 것 또한. 이와이즈미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의 밤은 건조하지만, 이 또한 잠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잔인하게도.






​2. 오메가버스 : 알파 X 알파


제멋대로 구는 것이 아주 성미에 안맞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 또한 계획대로 움직이고 꼼꼼하게 할 일을 체크한다거나, 단정하고 예의바른 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꽤 있었으니까. 그 또한 제멋대로인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짜증나는 것은 제멋대로인 상대에게 휘둘리는 것이다.


죽고 싶지. 고의적으로 짙어지는 페로몬의 농도에 이를 악물고 씹어뱉듯 말하면 생글대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게 가식적이기 짝이 없다.


터지는 박하향에 다리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져 이와이즈미는 이를 악물었다. 저게, 또 심술이야. 오이카와는 월등한 우성 알파의 페로몬으로 굳이 이와이즈미를 무릎꿇리는 것을 좋아했다. 오메가에게나 달큰하게 느껴질 그의 알파향은 똑같이 알파인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핑 돌게 한다. 점점, 교묘하게 풀려나오며 공기를 적시고... 짜증나. 이 쪽도 분명, 알파인데도 오이카와의 페로몬을 이기기란 힘들다. 자기도 그걸 아니까 저러는 것이다. 완전히 제멋대로인 오이카와는 늘 그래왔지만 이럴 때는 곤란하기 짝이 없다. 코끝을 파고들어 머릿속을 곤죽이 될 때까지 휘젓는 차가운 향이 외려 몸을 뜨겁게 한다─아, 섰다.

화르륵, 귀에 열이 몰리며 목덜미까지 벌개진다. 그러니까 이건, 저 새끼가 알파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러기엔 이와이즈미 자신 또한 알파라는 게 상당한 넌센스였지만 알 거 없었고. 이와이즈미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오이카와에게 불만 뒤섞인 시선을 던진다. 작작, 해. 이대로 가다가는 질식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선의 정점에 군림하는 오이카와가 여유롭게 웃는다. 그는 점점 여유를 잃으며 무너지는 이와이즈미를 사랑했다. 이와이즈미는 제멋대로인 오이카와에게 휘둘린다, 아주 속수무책으로.






​3. 키스


결국 끈질긴 구애에 함락된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틈만 나면 열이 끓는 시선을 던져오는 것에 지쳤는지 동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그는 오이카와의 입술에 마지못해 눈을 감아주는 것이다.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다가도 어느 순간의 타이밍에는 이와이즈미를 순식간에 벽으로 밀어붙이기를 잘했다. 벽으로 몰아 넣고 그 그림자 아래에 숨어 양 뺨을 감싸쥐면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문득 그 손이 희지만 크고 단단하다는 것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이자 애인이 정말이지 자신보다 오 센치는 크다는 걸 자각하곤 한다. 오이카와는 잘 웃는 남자였다. 시종일관 방글방글 웃어대는 것이 가끔은 열을 부추겨 끝내 크든 작든 한대 쥐어박게 하는 재주까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로 짓는 미소가 꽤나 미남형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이와이즈미는 그의 미소를 반은 사랑했으며 반은 탐탁잖아 했던 것 같다. 그만 웃어라,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불만을 툭 내뱉으면 오이카와는 정말이지 모르겠다는 듯이 뭘? 하고 묻는데, 그 여유로움에서 어쩐지 지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이와이즈미가 못 견디는 것은 이렇게─

"이와쨩, 혀 내밀어."

─활짝 피던 미소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싸그리 멎어버리는 순간. 언제부턴가 나기 시작했던 키차이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벽까지 밀어놓고도 다리를 벌려 선 채였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여전히 상하가 어긋난 눈높이에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구겼다. 손바닥 조차 펴 맞대어 볼 때는 크기가 차이가 났는데, 서브를 칠 때 배구공도 한 손에 쥐는 긴 손가락이 제 턱부터 뺨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면 왜인지 오롯이 속박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마지막 남은 나른한 미소를 입술에 걸친 채 저를 내려다보는 오이카와를 잠시 용인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채 입술을 벌렸다. 이미 한바탕 휘둘린 직후라 번들거리고 발갛게 부은 입술을 비집고 꾹꾹 눌러참던 혀를 내밀면, 그제서야 포식이 이어졌다.

키스를 하는 건지 물어뜯기는 건지. 이제는 목덜미에 감긴 그의 손가락이 뜨거웠지만 그보다도 더한 열은 입술 새에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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