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우시] YOUNG BO$$

HQ

2016. 6. 21. 04:40

​* 모브우시 요소 주의





보스는 어렸다. 타고난 전략가이자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장수였고, 약삭빠르게도 경찰의 쇠고랑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법 또한 알았다. 판도를 뒤집을 줄 알며, 누구보다도 달큰하게 도취된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법도 알았다.





나는 그의 아들이었고, 그렇지만 그를 보스라고 불렀다.

식사를 할 때는 늘 내가 문쪽으로 앉았다. 허리춤이나 자켓 안, 하다못해 구두 밑창 아래에까지 나이프를 숨겨두는 완전무장은 식사시간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보기 드문 새카만 흑발을 가졌다는 것 정도나 간신히 알았다. 검은 머리에 붉은 입술을 가진 여자를 좋아하던 보스는 꼭 닮은 처가 많았고 그에 딸린 아들들과 딸자식들도 많았다. 나는 그 중 하나일 뿐이라서 늘 가장 위험한 자리에 앉는다. 열여섯? 그래, 아마 그 쯤 되겠지. 그때부터 그랬다.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나 뿐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안오시나요?"
"바쁘시니 먼저 주무시라고 하셨습니다."


시라부 켄지로.


"응, 잘 자."
"주무십시오."


나무에 가지가 아무리 많다 한들 뿌리로 통하는 줄기는 하나다. 본처의 외동아들인 그는 '켄지로 도련님'인 동시에 어린 보스였다. 굳이 찬찬히 따지자면 그와 나는 이복형제였지만, 그를 켄지로 군 따위의 호칭으로 불러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목이 두개가 아니라서이기도 했으나 나는 보스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도, 부르고싶지 않기도 한 까닭이다. 어쩌다 내가 그의 신변을 담당하게 되어버린 것도 결코 반쯤 섞인 피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일이었다.

시라부는 어렸다. 내가 처음 보스를 뵈던 열여섯일 때 그는 열한살이었다. 나 또한 어림에도 그가 점점 두꺼워지는 책을 읽을 때 나는 점점 날카로워지는 칼날로 살을 저미는 법을 배워야했다. 그의 머리맡을 지키며 삐고 상처난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있노라면 어린 나는 어쩌면 그가 미웠을 법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라부는 늘 단정했고 예의바르며 맑아서,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웠음에도.



*



맹점이 그곳에 존재했다. 보스의 '아들'들─얽힌 핏줄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그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중에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시라부 켄지로 단 하나였는데, 그는 동시에 보스에게 살가운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는 단 한명이었다. 모두가 아들이란 명목으로 피 한방울 묻지 않게 키워진 시라부가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정작 보스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우시지마가 열 여섯에 본가에 들어와 열일곱에 시라부의 옆방을 배정받고, 매일 그의 방 불을 꺼주었지만 그는 하루도 아버지를 찾는 어린 애의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건 꽤나 안쓰러운 일이었는데, 글쎄. 적어도 그들은 무감각했다. 한번의 동작으로 깔끔하게 경동맥을 잘라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나, 무관심한 아버지를 두는 것이나 어느 쪽이 최악인지를 겨루는 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안타깝게도,
보스가 사랑하는 건 사랑스러운 도련님 쪽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보스가 내면 깊은 곳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사실 '진짜 아들'인 시라부 켄지로 뿐이다─하는 드라마틱 시나리오가 나와도 깊이 이해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총애하는 '아들'들은 아주 많으면서도 하나같이 '아들'이 아니었다. '와카토시, 방으로.' 하는 짧은 부름에 그는 동료에게 시라부의 방 열쇠를 넘겨준 후 몸을 씻고, 정장이 아닌 유카타를 걸치고 보스를 찾아야 했다. 우시지마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무튼 그는 여기서 나가면 비도 마르지 않은 뒷골목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구르다가 다른 세력의 끄나풀에나 걸려 생을 마감할 기구한 운명이었다. 원래 이런 조직에 깊이 말려들어서 좋을 게 없는데, 우시지마는 이미 태어날 적에 핏줄부터 엉켜 든 케이스였다. 보스가 마호가니 책상 아래에 그를 구겨넣고 무릎을 꿇린 채 바닥에 닿은 맨 무릎이 벌개지도록 제 것을 빨게 하거나, 제가 보는 앞에서 유카타를 젖히고 뒤를 풀게 하거나. 뭘 시키든 딱히 감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보스 또한 그의 짧은 머리칼을 휘어잡아 흔들며 눈을 까뒤집을 때까지 몰아붙이는 데에나 흥미가 있었지 혈연으로 이어진 핏줄이나 몸을 섞는 행위가 수반하는 감정의 꼬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실제로 백팔십은 예전에 훌쩍 넘은 데다가 스스로 만져보기에도 살이 단단한 편인 우시지마가 그에게 다리를 벌려야 했던 건 가끔 생각이 나거나 동할 때, 정도로 국한되어 있었다. 일일히 수치스러워하거나 울어대기엔 참 버석거리고 메마른 환경이었다. 그가 제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과 그 아랫사람이 복종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그는 시라부의 방 불을 꺼주는 것을 종종 소홀히 한 것 뿐이다.

옷을 벗고 무릎으로 길 때 종종 가해지는 인간 이하의 취급보다 안타까워야 하는 것은 그럴 때마다 그의 몸에 짙게 밴 제 아비의 냄새에 괜히 ​한번 더 그 소재를 묻는 시라부였다.





우시지마는 열일곱부터 나이프를 제대로 쥐는 법을 알아야했다. 손에 잡히던 옅은 굳은살이 쌓이고 쌓이는 동안 그는 키가 많이 컸다. 실은 그 때부터 타고 난 체격이 큰 편이었고, 보스에게서 난 자식들은 으레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별로 감흥이 없었다만, '곱게​​ 자란' 시라부는 그와 꽤 덩치차이가 났었다. 명분이 있기에 곱게 자라는 중인 도련님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었지만 사랑은 메말라있다. 그는 자라면서 점점 말수가 줄었고, 웃음이 단정해졌다.─우시지마는 여전히 그의 옆방에서 먹고 자며 그의 방 불을 끄며, 신변을 보호하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금세 또 나이 답던 작은 몸을 탈피해 여전히 아래에 위치했지만 거의 맞먹는 눈높이로 자라버린 건 조금 낯설 뿐 응당했는데, 그 날이 거의 당연하게 넘어가던 그의 성장이 덜컥 턱에 걸리던 날이었다.


"와카토시, 방으로."


그런 행위에 숫자까지 붙여가며 횟수를 세는 취미는 없어서 정확히는 헤아릴 수 없었으나 대충 열댓번째 부름이었다. 많은 소년 중 우시지마가 딱히 보스의 총애하는 애첩같은 게 될 위치나 상황은 여러모로 아니었기에 마지막 부름은 벌써 일년 전이었다. 무슨 구미가 당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솔직한 심정이었으며 늘 그러하였듯 그다지 반발심은 들지 않았기에 우시지마는 방을 비울 예정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아버지는 안오시나요?' 를 물어 볼 어린애가 없다. 훌쩍 커버린 도련님은 그러지 않아도 무뚝뚝한 편인 보디가드와 살가운 유대를 유지하는 편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서운해 할 사람이 아니었던 우시지마는 시라부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중이었다. 어릴 때는 그래도 말을 곧잘 나눴지만 요새는 말에 대답이 후하지 않은 우시지마와의 대화가 벅찼는지 어쨌는지, 방문 앞을 지키고 있자면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끈질기게 힐끔대면서도 절대 말은 걸지 않는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징하게 눈치가 없었다. 주변상황에 흔들릴래야 흔들릴 수 없는 냉철함과 우직함은 조직의 파벌싸움에서나 유용했지 실생활에서 크나큰 골치라는 것은 본인 빼고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시라부는 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고개를 돌리거나 뒤돌지 않는 그를 바라볼 때마다 묘한 안도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어디 가세요?"
"보스가 부르십니다만."
"왜요?"


시라부 켄지로는 유독 우시지마에게만 꼬박꼬박 경칭을 붙인다. 그가 열세살일때 부터 신변보호는 우시지마가 맡아왔기 때문일 것이라며 보통은 모두 이해하지만, 정작 세살 적부터 보아 온 집사에게는 모든 존칭을 생략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우시지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보통 이 시각에 보스의 방에 불려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비밀인 까닭이다. 우시지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글쎄'라는 단어로 답을 뭉뚱그렸다. 시라부는 어느때보다도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그만큼 불만에 가득 차 다물린 입매는 본 적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와카토시?"
"나, 아직 안자는데. 왜 가요? 가지 마요."


몸을 씻고 정갈히하며 옷을 갈아입혀 방으로 보내려면 시간은 빠듯한데,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우시지마에 결국 독촉이 와 꽂혔다. 보통의 경우 우시지마나 시라부가 아닌 손에 의하여 열리는 일이 거의 없는 방문이 노크와 함께 타인에게 열렸다. 우시지마는, 멱살을 잡아 아래로 끌어당겨지는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던 손으로 결국 시라부의 팔을 아프지 않게 부여잡았다.

시라부 켄지로는 그에게 키스했다.

일분이 채 안되는 찰나였지만 입술이 맞닿은 상태라면 십초도 길다고 그는 생각했다. 열린 문 너머의 수많은 눈이 경악에 젖는 것을 양쪽 다 보지 못했다.





은은한 장미향이 감도는 향유는 우시지마 외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처염한 향기는 사실 우시지마와도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았던지라, 사용빈도가 바닥을 쳐 몇년이 넘게 쓰는데도 바닥을 드러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능숙하게 향유로 살결을 갈무리한 우시지마는 보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카타의 매듭을 풀었다. 조금 늦은 벌을 받아야겠지, 보스의 음성은 늘 그렇듯 아주 낮게 가라앉아 그를 아래로 잡아끈다. 우시지마는 그에게 시라부가 키스를 했다는 말을 꺼낼 마음도 없었지만, 어차피 이 곳에서 그가 입을 열 수 있는 건 울며 애원한다거나, 원하는대로 짖어야 할 때 뿐이었다. 우시지마는 다리를 벌리고 반이상 가득 찬 항유병에서 향유를 듬뿍 덜어내어 제 뒤를 적셨다. 줄줄 흐른 기름에 허벅지며 바닥이 번들번들 빛났다. 어차피 곧 엎드려 기어야 할 바닥이다. 그는 아끼지 않고 한번 더 병을 기울였다.

주인은 언짢은 듯 보였다. 심기 불편한 그의 아래에서 우시지마는 짖었다.
명백하게 갈린 아래와 위, 상하관계에 복종하는 법을 그는 알았다.


"보스."
"예쁘게 짖어야지 않겠나, 와카토시 군?"


눈이 풀리고 인상이 찌푸려져도 결코 주인에게 이를 세우거나, 손톱을 드러내지 않도록. 우시지마는 자연스레 입을 벌리고, 젖은 얼굴을 그에게 부비며 아양을 떠는 법을 배운다.


"멍."


자세를 낮추고 기면서도 알고 있었다. 주인의 흉포한 으르렁거림에서, 오늘은 벌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



시라부가 우시지마를 다시 만난 건 일주일이나 후였다.

시라부는 그의 '아버지'에게 단 하나의 아들이었으나 어느 한 순간도 시혜받아본 적 없는 위치였다. 부모의 온기를 좇던 어린 날의 그는 아주 냉소적이 되었는데, 그건 아마 몇달 전, 그 날도 우시지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불을 꺼주던 날들 중 하나였다. 다시 만난 우시지마는 언제나처럼 꼭 채운 정장차림 이었으나 목부근의 울긋불긋한 울혈들과 손자국을 가리지 못했었고, 그를 상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시라부는 결국 저만 모르던 암묵적 룰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보스의 방으로 불려간다. 그 뜻을 알고나서야 왜 아버지가 끝끝내 자신만은 살갑게 초대해주지 않았는지, 치기어린 불평이 사그라들었다. 모순적이게도, 시라부는 그날로 아버지에 대한 선망의 시선을 모두 거뒀다.

벌건 손자국이 선명하던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바라보는 시선에 정체모를 열기가 섞여든 것도 아마 그때 쯤일 것이다. 시라부 켄지로는 그에게 키스했다.


"우시지마?"


재회에 든 일주일의 시간은 가혹하게 길었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게 수컷들의 서열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아버지의 영역을 탐한 대가는 컸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선이 범하는 무례는 낯설고, 날카롭다. 과거의 시라부는 맹세코 한번도 '보스'가 그은 선을 넘을 마음이 없었지만 깨어난 수컷의 본능은 이미 영역싸움의 한복판에서 상대를 물어뜯었다. 우시지마가 돌아온 것은 꼭 일주일하고도 반나절 후였다.

굉장하네, 하고 멋대로 생각해버린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우시지마는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시라부에게 흐르는 시간이 안겨주는 기다림이 가혹했다면, 우시지마에게 가혹했던 것은 시간 그 자체다. 시라부는 옷으로도 채 가려지지 않을만큼 울긋불긋 붉고 푸르게 피어난 폭력의 흔적에,


"우시지마 씨, 어떻게?"
"도련님, 와카토시와 사적인 이야기는 자제하라고 보스께서."


끼어드는 목소리는 우시지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다 터져 피딱지가 앉은 채 작은 밴드까지 붙은 그 입술이 열렸다면 더 화가 났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자신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이름, '와카토시'는 충분히 그의 심술을 태운다. 시라부는 화살을 돌렸고 탁상에 놓인 화병을 집어 그대로 그에게 던졌다. 쨍그랑─ 화병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는 요란했고, 어쩌면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와 같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파편과 피가 흐르는 이마를 붙들고 뒷걸음질쳐 방을 나가는 조직원 하나. 화병은 작았지만 깨어진 건 크다─물결치는 호수에 더이상 남아있지 않은 잔잔함이 바스라져 날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시지마는 일주일이나 쉬었음이 믿기지 않을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묶인 흔적이나, 보기만 해도 민망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남겨진 가학성 행위의 흔적들이 벌겋게 남아있었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기에 의자를 권했지만, 우시지마는 거절했다. 회초리로 맞아 헤진 엉덩이 때문에 앉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건 말하지 않는 이상 시라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무래도 좋았다.


호수에 파도를 끌어 온 것은 시라부였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차기 보스였고, 언젠가는 세력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렇게 키워졌으며 때문에 한 조각 웃음조차 아비에게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지만 시라부는 그간 하지 않았던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다─엿이나 먹으라고 해.



*



스스로가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할 때는, 남의 것을 빼앗아 움켜쥔 채 손아귀 속에 예쁘게 자리잡은 그것에 입을 맞출 때가 아니라 다음 순간 미련없이 손을 펼쳐버릴 때다. 흩날리는 꽃잎이 아름답지만 주워담아 다시 피워낼 수 없는 것처럼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라부는,



3년이 지났고, 시라부는 어릴적 제 어깨 위에 반쯤 올려진 조직의 무게를 기억하지 않는다. 건조한 공기가 숨을 막던 것이나, 텁텁하던 분위기는 더이상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는 이제 보고 있노라면 숨통이 트이던 우시지마의 다물린 입매 미만에서 잔류하지 않는다.


"수많은 새끼들 중에서 여자애들은 팔거나 어미에게 맡겼고, 쓸만한 남자애들은 솎아내어 칼을 쥐여주었지."


아버지의 마지막 정도는 기억해주고 있었다. 최고점의 반전과 몰락, 그 끝에서 그는 여느 지는 해처럼 진하게 기염을 토했었다. 시라부는 몇달 전 조직의 보스를 쐈다. 그의 아버지였으며, 그의 옆 최측근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나 그가 끌어들인 수많은 조직원 중 일부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모두의 보스,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 군림하는 자였다. 결국 뒤집힐 판도였다는 걸 인정하듯 그는 바뀌어버린 군림하는 자에게 배에 총알을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척 보기에 무른 애들은 버렸다. 몇십명을 솎았지. 그 중에 제일 영악한 새끼를 골라내는 게 어려운 줄 알았나?"
"너는 나를 꼭 닮았어."


시라부가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조의는 총알 두방이었다. 그래서 시라부는, 눈앞에서 그의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모두가 고개 숙여보이는 앞에서 뒤집힌 자는 식어가고 뒤집은 자는 타오른다. 시라부는 조직을 손에 넣었다. 그건 두 개의 빈 탄창 이전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조의였는데, 결국 우시지마를 가질 수단과도 같았다. 이럴때야 말로 제가 성격이 나쁘다는 걸 실감하며 얻은 권력을 대놓고 움켜쥐면, 과거에 꼭 같이 움켜쥐던 우시지마의 목덜미는 생각하지 못하고 인상을 구긴다. 너는 나를 꼭 닮았어. 시라부는 그에게 동의했다. 이 순간 그에게 어릴 적 받았던 차가운 시선을 돌려보내주는 것에서 오는 쾌감보다는 제 옆을 지키는 우시지마 와카토시에게 의의가 크게 있었다.

영악한 새끼.

피가 튄 바짓단을 털고 손을 닦은 후 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우시지마였다. 아, 이제서야 가졌다. 시라부의 잔잔하던 호수에 돌멩이가 된 남자였다. 결국 파도가 치고 파국으로 치닫은 후라면 남는 것도 그가 되어야 마땅했다. 결코 끼어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피 튀기는 전장에 뛰어들어 결국 맨 위를 차지한 원동력이자 목적이었다. 그에게 입을 맞출 때, 시라부는 보스─이제는 과거의 영광인 그의 의견에 한번 더 동의한다. 나는 참으로 영악하게도 놓아줄 생각 한 점 없이 오롯이 옭아맬 계획인 것이다. 그의 입술을 물어 벌리고 혓바닥을 진득하게 빨며 입을 맞추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여전히 눈도 감을줄 모른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와 다르게 주변은 눈을 감을 줄 안다는 것 정도일까, 누구도 감히 그 모습을 고갤 들고 바라볼 생각을 않는 것이다. 그건 퍽 만족스러웠다만 말라붙은 핏자국의 비린내는 진절머리가 난다. 시라부는 당연하게도 우시지마에게 목욕시중을 부탁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기에 그가 대신 입꼬리를 올려 웃어주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뜯어내서라도 가지는 성미나 영민한 머리를 분명 꿰뚫어보았기에 시라부가 단 하나의 '아들'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여전히 그는 거대한 조직의 머리가 되어 줄 생각이 없었다. 후임은 꼼꼼히 고를 것이다, 오늘 밤 우시지마의 뒤에 넣어 줄 장난감이나 역한 장미향대신 발라 줄 향유를 고르는 것 만큼은 못하겠지만.


"오늘은 불 꺼주실 필요 없습니다."
"제 옆에서 잠드세요."


승리자의 미소가 달큰한 이유를 깨달았기에 그는 '보스'를 이해해주기로 했다. 물론 우시지마, 그의 목덜미에 자국을 새기는 것은 저 하나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보스는 어렸다. 타고난 전략가이자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장수였고, 약삭빠르게도 경찰의 쇠고랑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법 또한 알았다. 판도를 뒤집을 줄 알며, 누구보다도 달큰하게 도취된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법도 알았다.

그가 가장 잘 아는 것은 원하는 것을 가지는 방법이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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