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로] 저는 취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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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8. 01:28
* 쿠로른 전력 60분 참여작. 주제 - 버릇, 습관
알코올을 들이부은 입 안은 맹물을 머금어도 겉도는 소주의 잔향이 기분 나쁘게 알싸했다. 아무리 즐기려고 마시는 게 술이라지만, 보쿠토는 취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부어대려면 그 맛이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걸 통감하는 중이었다.
"어이, 맹물 그만 들이키시지?"
"입가심이거든?"
"입을 왜 헹굽니까? 그냥 마셔, 예의가 아니라고!"
으응, 응.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잔에 남은 반을 들이켜 쿠로오의 입을 막는다. 물론 이 것도 맹물인데, 저쪽은 이미 반쯤 가셔서 눈치 못챘다.
저는 취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아아, 오늘 좀 잘 받는데? 삐딱하게 웃으며 잔을 쭉 넘기는 쿠로오를 힐끔 보더니 보쿠토는 또 다시 잔을 물로 채웠다. 저 새끼는 의외성이랄 것도 없이 정말 정직하게 생긴대로 노는 놈인지라, 같은 페이스로 마시면 백퍼센트 이쪽이 먼저 취하거나 같이 취한다. 그러면 안되지, 암. 보쿠토는 건배, 를 외치며 잔을 부딪히면서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맹물을 들이켰다. 웬만하면 술친구로 나온 자리에서 같이 마셔주고 싶은데, 이게 다 쓸데없이 술이 센 네 탓이야.
"야, 보쿠토."
"으, 응?"
술 버린 거 들켰나? 둥그런 눈으로 눈동자 굴리면서 눈치 봐 봤자 거짓말 하는 것만 딱 티나니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부엉이 지능이 거기서 거기지 뭐. 쿠로오는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술을 넘겼다. 남자끼리 무슨 일 있어야 술 마시나. 오늘따라 뭐 마려운 개처럼 구는 쟬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는, 취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보쿠토가 속으로 무슨 의지를 다졌는지, 쿠로오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야, 코타로."
"응?"
시작한다. 보쿠토는 테이블 아래로 쥐고 있던 물병을 슬쩍 바닥에 내려놓곤 옆으로 죽 밀었다. 너 말이야... 말 끝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는 게 딱 취했다. 내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가만히 술도 못마시고 버텼다. 티나게 밝아진 얼굴로 쪼르르 달려가 냉큼 옆자리를 꿰차는 게 누가봐도 취하길 기다린 게 분명하지만 이미 한풀 꺾인 쿠로오는 그걸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게다가 이 자리엔 단 둘 뿐이니 결국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아, 어지러워서 짜증나.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꾹꾹 누르며 심통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쿠로오에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너무, 너무 귀엽잖아. 어떡하지? 아카아시에게 문자해야하나? 팔불출이라는 건 제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나 간신히 아는 보쿠토가 어쩔 줄 모르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놓는다. 새벽 세시구나, 안되겠다. 그런데서 아쉬워하고 있으니 이미 답이 없다.
취해버린 쿠로오는 진짜 귀엽다.
그게 지금 보쿠토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뭘 던져주든 나오는 결론은 쿠로오가 귀엽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정도. 혹은 그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어떤 형용사들이 추가되어 나오기도 한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제 눈꼬리를 잡아 늘이며 낄낄 거리는 장난이 한창인 쿠로오가, 너무 귀여웠던 것이다. 어디 내놓아도 빠질 얼굴이 결코 아닌 쿠로오가 객관적으로 귀엽지 않냐면 그건 아니지만, 보쿠토가 콩깍지가 아니냐면 지구가 두쪽나도 절대 아니다.
아카아시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보쿠토는 실컷 눈꼬리를 올렸다 내리는 중인 쿠로오가 너도 해보라며 애교─제 눈에만─를 부리는 것에 해결책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게, 그러니까. 이게 너무 귀여워서 어떻게 해야하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이런 걸 보려고 물만 들이킨 주제에 고민은 꼭 자기처럼 바보같은 것만 해대고 있다.
결국 보쿠토는 쿠로오에게 입을 맞췄다. 솔직히 사심이 아예 없는 입맞춤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그 입맞춤에는 들어간 사적인 욕망이 2% 미만이다. 순전히 볼살을 잡고 장난치는 중인 애인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가 술취한 제 것에게 하는 입맞춤의 이유인 셈이다. 이 쑥맥을 어찌하면 좋을까, 한다면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보쿠토가 기를 쓰고 취하지 않은 이유는,
"보쿠토오!"
지금부터니까.
그러니까, 보쿠토가 맹한 구석이 있다 못해 넘치는 건 맞지만, 일부러 취하게 하고는 입술 뽀뽀밖에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거다. 수 년간 블로킹을 뛰느라 크고 두꺼운 손이 보쿠토의 뺨을 감쌌다. 쿠로오, 너 진짜 나말고 다른 놈들이랑 술 먹으면 안되는 거 알지?
누가 예고하지도 않았지만 보쿠토는 쿠로오의 다음 행동을 알고 있었다. 쿠로오의 젖은 입술에선 채 마르지 않은 술 맛이 났다.
보쿠토와 쿠로오가 사귄 게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보쿠토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게 있다. 쿠로오 테츠로가 잘생긴 건 알겠는데, 잘생긴 놈들 얼굴값하는 것도 알겠는데, 내 애인은 안그랬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이기적이고, 귀여운 질투. 생긴대로 노는 쿠로오는 대학에 가서도 참 친구가 많았다. 그렇다고 보쿠토 쪽이 인기가 없냐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자기도 일주일에 술 약속 서너개는 들어오면서 꼭 나한테만 저래.
"그래도 넌 안된단 말이야."
"하?"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이유에 보쿠토는 답답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이 없다는 듯 되묻는 쿠로오에게 한번도 그럴싸한 반박을 댄 적이 없다. 술은 나랑만 먹으란 말이야, 하는 억지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귀엽게 봐주기만을 바랄 수 밖에.
쿠로오 테츠로는 어마어마한 주량의 소유자였다. 어찌 된 게 사람이 반전이라는 게 없냐, 잘 먹게 생겨서 진짜 잘 먹네... 가 보통의 술자리 후일담이었다. 그런데도 보쿠토는 유난히 그의 음주에 예민하다. 그 이유는 딱 한명. 보쿠토만 알고 있는 그의 술버릇이다. 어마어마한 주량에는 어마어마한 술버릇이 따라붙는 거냐. 두 사람이 처음으로 진탕 취할 때까지 마신 게 고등학교 때였다. 아직도 그 날 쿠로오보다 술이 약하면 약했지 더 마시진 못하는 보쿠토가 그보다 늦게 취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밝혀지지 않은 기적의 일환으로 쿠로오의 술버릇을 알아낸 보쿠토는 그날 삼 년을 쓰지 않은 일기까지 썼더랬다. 그 일기장은 전설로 남아 여섯달 간 살이 붙어 완벽한 [쿠로오 테츠로 매뉴얼]로써 보쿠토의 잠긴 서랍 맨 아랫칸에서 잠을 자는 중이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첫번째, 일단 쿠로오는 취해도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는다. 하얀 편이 아니라서 티가 나지 않는 건지는 몰라도 낯빛으로 취했는지를 구분해내는 것은 추천하지 않음.
두번째, 상상 이상으로 취하는 게 느리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 취했냐고 물어보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으니 괜히 수상해보이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좋다.
세번째, 쿠로오는 취하면 호칭이 달라진다.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긴장을 조금 풀어도 된다. 취한 김에 묻고 싶은 게 있었다면 이 때를 노리도록 한다. 조금 더 취하면 대답할 때 자각 없이 거짓말을 하거나 헛소리를 함.
네번째, 말꼬리가 늘어지기 시작한다면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불러도 100% 취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 안심해도 좋다. 참고로 이 단계까지 오는 데에는 약 소주 일곱병,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 기재해 둔 것은 최소치다.
네번째 항목 아래에는 같이 술을 마신 날, 몇병을 먹고 여기까지 왔는지 날짜와 함께 주량마저 꼼꼼히 메모해 둔 것이 도저히 일기 주인이 노트필기 수행평가의 최하점 3관왕인 보쿠토 코타로가 될 수가 없었다. 이쯤되면 정체가 의심되는 꼼꼼함이지만, 다섯번째 항목은 잡생각을 싸그리 날려버릴 파워가 충분했다.
다섯번째, 쿠로오가 뽀뽀를 한다.
쿠로오가, 뽀뽀를 한다. 별 다섯개.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면,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다가 닫았던 핸드폰 화면에 떠 있던 숫자가 오늘이 5월 8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줬음을 상기했다. 5월 8일, 소주 여섯 병과 맥주 두캔. 많이 마셨음. 내일쯤 업데이트할 일기장의 내용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알코올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가 말라버린 입술은 적당히 물기가 있으면서도 차갑다. 쿠로오는 보쿠토의 뺨을 감싸고, 콧잔등이고 뺨이고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입술을 갖다대는 중이었다.
나는 취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쿠로오의 뽀뽀를 받아야합니다.
보쿠토는 완전히 신나 생글생글 웃는 중이었다. 낯간지럽다며 통 애정표현이 적은 쿠로오가 먼저 입술을 맞대주는 것이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다. 뺨을 감싸잡았던 손은 어느새 보쿠토의 목을 감아 안고, 술김에 목적지를 미스하여 입술에 도착해버린 입술은 이미 질척하게 얽히는 중이었다. 보쿠토는 그래보여도 꽤나 약은 남자였다. 아니, 정정. 애인이 무방비하게 헤실대며 입을 맞춰오는데, 술 좀 먹이는 것 가지고 약았다고 칭하기는 너무 야박하다. 그냥 평범한 변태라고 한다면 대략 들어맞겠다. 이미 자연스레 쿠로오의 티셔츠 아래를 헤집고 있는 게, 부정하려면 입이 열개 쯤 되어야할 모양새다.
보쿠토는 굴러들어오는 기회를 차버리지 않는 남자였다.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굴렀고, 쿠로오가 도중에 덥다며 벗은 티셔츠가 그 옆을 배회했다.
"너랑 술마시고 떡을 안치는 날이 없잖아, 오늘은 술친구로 나와. 애인 말고."
오늘을 포함해 열 세번도 넘게 술 약속 단골멘트인 저 말을 뱉는 것은 늘 쿠로오 쪽이었다. 술김에 뒹굴고 나면 숙취에 두통에 허리까지 작살나서 힘들거든? 그렇게 주장하는 주제에 결국 베드 인의 불씨는 제 쪽에서 당긴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쿠로오의 벗겨진 속옷이 결국 오늘도 침대 옆 바닥에 신세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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