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이와] 침식

HQ

2017. 4. 11. 19:27

* R-19
* 오이이와 기반, 불륜 소재 有






어긋남이라는 게 매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단 생긴 균열은 언제나 가장 최악으로 깊어진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배구선수인데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는 자주 스포츠잡지─주로 배구선수가 나오는─를 뒤적이며 하이 스펙의 선수들이 소개 된 종이를 한참 뜯어보곤 했다. 문제의 '남자친구'인 오이카와의 오래 된 불만은 국가대표인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그런 아마추어 선수가 눈에 들어오냐는 것이었고, 그럴 때마다 이와이즈미는 내가 널 알았을 때는 너도 아마추어였다며 단순히 일갈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마친다. 그러고서는 또 모 선수의 프로필을 넘기면 나오는 건강식단 까지 무표정으로 꼼꼼히 읽기 시작하면, 얼마 전 합숙 훈련에 기뻐 날뛰며 받아 간 이와이즈미 표 도시락에 이 페이지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는 오이카와는 입이 댓발 나온다.


"이와쨩, 그게 왜 재밌어? 하기야, 오이카와 상보다 못생겼는데도 한참이나 프로필 뜯어보는 것 보다는 낫지만!"
"─하지만 나는 아침식사 고구마로만 하지 않아도 걔보다 서브 잘친단 말이야."
"무릎이나 조심해, 멍청아. 한번만 더 오버워크로 인대 다쳐오면..."


으악, 잔소리! 과장되게 질색을 하며 귀를 막는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해 보인다. 이게 진짜, 로 시작하려는 이와이즈미를 답싹 끌어안은 오이카와는 네, 절대 안그럴게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뺨에 입을 맞춘다. 실은 이런 것에 껌뻑 넘어간다는 것도 알고, 화보처럼 찍혀 포토샵까지 완벽하게 완료한 채 프린트 된 선수 프로필 같은 건 아무리 보아도 이와이즈미의 눈에는 차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안다.


"이와쨩은 나 없으면 아마추어 선수 만날 거예요?
"꺼져, 너 아니었으면 여자 만났으니까. 아, 손 넣지마!"


틈만 나면 수작질을 부려대는 것은 익숙해져 있었지만 손버릇 하나는 진짜 나쁘다. 정신을 쏙 빼놓으며 퍼붓는 키스세례가 사그라들고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아주 자취를 감춘 제 티셔츠의 존재에 이와이즈미에게 든 생각은 역시─이 자식이 또.

금세 엉덩이살을 그 큰 손으로 한웅큼에 쥐어오는 오이카와는 늘 그렇듯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낯 뜨겁다니까 귓등으로도 안듣지. 어째서인지 남자친구마냥 이것저것 챙겨주는 건 이쪽인데도 침대 위의 포지션은 그게 아니다. 왜 내가 아래야? 한번도 제대로 된 답을 들어 본적이 없는 질문이다. 오이카와는 몇번이고 '제대로 된 답'을 줬지만─물론 몸으로─이와이즈미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입버릇처럼 '오이카와가 아니었다면 여자를 만났다'라고 말한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감정선인지라 그들의 진짜 관계를 모르는 자들의 눈에도 오이카와 토오루와 이와이즈미 하지메 사이에는 갑과 을이 확연하게 보이곤 했다. 친구 혹은 연인. 어떤 것이든 일단 무조건 갑은 이와이즈미였고, 갑을을 따지는 연애는 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정설이 있음에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을이었으며 동시에 맹목적이었다. 그 관계가 뒤집히는 것은 단 한 순간, 침대 위의 이야기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같은 침대 위라도 섹스 중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평소보다도 갭차이가 확연하다.


"죽고싶지. 내가 작작, 하라고."
"이와 쨔앙... 우유? 물? 튀김두,"
"나가라고."
"잘못했어, 제발 그것만은!"


이와이즈미는 달달한 연애나, 비슷한 부류의 분위기를 못견뎌하는 성미임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와의 관계는 이년 이상 지속할 정도로 그러지 않아 보이지만 상대에게 각별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오이카와와의 달큰한 필로 토크에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애초에 오이카와 자체가 현역 운동선수인 주제에 발정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탓이기도 했고 어쩐지 섹스를 버거워하는 제 탓이기도 했다. 다른 때는 조곤조곤 배려하는 데에 도가 터서 오히려 과도한 배려에 짜증을 부린 적도 적지 않지만 일단 올라타면 오이카와 토오루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처음으로 관계를 했던 그 날부터, 바로 어젯밤까지. 이와이즈미가 결국 울음을 참을 수 있었던 날은 손에 꼽았다. 늘 시트를 꽉 쥐고 바르르 떨며 고개를 젓는다. 오이카와의 손등을 붙잡고 손톱을 세우는 것으로 모자라 그만하라며 끊기는 목소리로 빌기도 했으나 절대 먹힌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밤중이나 다음 날 아침이나 누구 하나는 작살나는 게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다.

결국 징징대는 오이카와를 쫓아내는 데 성공한 이와이즈미는 아리는 허리나, 민망하게도 욱신거리는 엉덩이 등에 인상을 구기며 눈을 꾹 감았다. 아주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그래.

오이카와와의 섹스가 버거웠다.

처음으로 연인과의 관계가 버겁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점점 확고해져가는 데에는 장사가 없다. 일단 가장 분명한 것은,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지금 심란하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옆에만 있게 해주면 안될까요, 이와이즈미 상?'을 외치다가 쫓겨난 오이카와의 얼굴이 아른아른. 그는 울리는 머리를 붙들고, 조금 더 자기로 했다.







가끔 상황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를 되짚어볼 때는, 보통의 경우 일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했을 때가 아닐까.

이와이즈미는 이미 이 생각을 하는 것부터 틀려먹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착실한 계산 중에 있었다. 그러니까, 오이카와가 소속한 일본 국가대표 팀이 예선전에서 승리하던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주 결정적인 경기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경기도 아니었다. 다음 예선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이와이즈미 또한 경기 중계방송을 보며 손에 땀을 쥐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오이카와가 뒷풀이 겸 술자리를 가진 후 귀가하겠다는 연락을 해 왔을 때 까지는 딱히 별 느낌없이 오케이를 했었던 날.

새벽의 일이다. 예상보다 늦는 귀가에 평균 수면 시각이 조금 이른 편인 이와이즈미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기를 이긴 날에는 꼬박꼬박 오이카와를 기다려 뺨에 입을 맞춰주고, 나란히 잠에 드는 것은 꽤 오래 이어진 습관이었다.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네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도어락이 삑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역시나, 고주망태가 되어서 비척대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이와쨔앙, 기다렸어?
혀까지 꼬인 채 어물적 어물적. 걷는 게 신기할 정도로 취해 있었고, 지독한 술냄새가 났다. 그리고... 보았던 것이다, 얼른 그의 몸을 받쳐 부축하고 고개를 돌리던 순간 선명하게 남은 오이카와의 목덜미 위 새빨간 립스틱 자국을.



귀가한 남편의 하얀 와이셔츠 위 붉은 립스틱 자국은 드라마에서도 흔히 쓰이는 클리셰적 요소로 많은 커플의 불화의 싹으로써 널리 쓰여왔다만, 그게 제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이와이즈미는 꽤 유치한 심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엷게 발린 립스틱에서 질투를 읽었다.





일단 상황은 이루 말 할 것 없이 최악이었고, 정황상 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파국으로 치달았는지 회상해보는 것은 굉장히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일이었으나 이와이즈미가 취할 수 있는 선에서 이보다 더 나은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어이, 기다려봐. 잠깐...!"
"여기까지 왔으면서 빼는 건 예의가 아니지, 한마디만 더 하면 재갈을 물리고 해도 된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이봐, 그런 게 될 리가 없, 잠시. 야!"


정말이지 상대가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을 정도로, 남자와의 섹스는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늘 울다 지쳐 기절해선 다음 날 아침부터 완전히 퉁퉁 불어 일어나는 일상은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이와이즈미는 실제로 오이카와가 아닌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었는데, 어째서 회원제도 아닌 평범한 클럽에서조차 또 남자에게 꿰여 잡혀 왔냐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이다. 완전한 강제는 아니었다. 상대도 상식이 있는 만큼 싫다는 사람을 붙들고 떡하니 고급 호텔방을 긁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거하게 취해버린 이와이즈미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만났던 일곱살 때부터 생애에서 그를 빼면 몇가지 남지도 않는 삶을 살아왔는데, 처음 부모님에게 배워 마셨던 술도 옆자리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다음도, 그 다음도. 하다 못해 마지막 술자리인 엿새 전의 그 곳에서도 오이카와는 빠지지 않았다. 심심찮게 취해버리곤 하는 그는 제 주량이 오버하는 것 보다 이와이즈미를 더 징그럽게 챙겼는데, 덕분에 단 둘이 아닌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해버린 적이 딱히 손에 꼽는다. 둘이서만 마실 때는 터치를 않지만 제 3의 인물이 하나라도 개입하면 이야기가 바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건 거의 집착이라며, 얘길 들은 친구들은 진지하게 불평한다만 이와이즈미는 그걸 딱히 나쁘게 여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내가 왜, 내 주량도 제대로 몰라서.

칵테일이나 까베르네 쇼비뇽과 같은 양주는 별로 선호하지도, 연이 깊지도 않았던 탓이 크겠지만 이와이즈미는 이름이 길어 제대로 읊지도 못할 달짝지근한 술을 몇 잔 들이키다가 그만 취해버렸다. '취해버렸다', 라는 단순한 서술어에서 끝났다면 좋을 문제지만, 아예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고 눈이 핑 돌만큼 한순간의 일이라면 꽤 심각한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멍하게 눈을 끔뻑이다가, 팔 아래를 잡아오며 부축해주던 한사람의 단단한 손에 기댔었는데, 마디가 두꺼운 그 손이 오이카와를 닮았다고 멍하니 생각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침대 위였다. 이게 무슨 당황스러운. 이와이즈미는 제 숨결에서 지독하게 짙은 알콜향을 맡았다.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상당수 이해했으나, 그건 납득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정말이지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좆됐다.



당연하겠지만, 남자는 그만 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흐느적 흐느적, 몸을 가누는 데 집중하다 보니 이미 반라상태인 것에 이와이즈미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호텔까지 얌전히 따라와 놓고 이제 와서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둥의 말을 해봤자 헛소리요, 쇠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은 이와이즈미 자신이 더 잘 안다는 게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이카와가 아닌 다른 남자와의 섹스.
이와이즈미는 겁에 질려 입막음 차 입술을 겹쳐오는 낯선 남자의 체향에 그만 눈을 감았다.



A.M. 3:00
질리지도 않고 울리던 전화기 진동이 마침내 멎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탓에 진동의 세기도 가장 약하게 내려놓은 것이 선견지명이라 할 정도로, 낮게 웅웅대던 진동소리는 훌륭히 분위기에 녹았다. 핸드폰은 벗겨진 채 내팽개쳐 둔 옷가지의 주머니 어딘가에 얌전히 들어있었는데, 당장 바로 앞에 있었다면 이와이즈미는 전화를 받기 보다는 전원을 꺼버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 말해."
"싫, 아... 흑, 거기 하지, 아! 너무, 빠르다고 개자식... 앗!"
"뭐라고, 불러줄까. 뭐... 키티?"


헛소리 좀 작작해. 터지는 울음에 다음 말을 채 뱉지 못하고 고개를 그의 어깨에 쳐박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더 급하게 쳐올리는 것에 울며 뱉은 목소리는 제 입술이 그의 귓가에 바싹 대어져 있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이즈미.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배덕감에 이와이즈미가 몸서리쳤다. 눈물방울이 크게 뚝, 떨어졌으나 둘중 누구도, 뜨겁게 복받친 공기조차 개의치 않는다. 남자는 그제서야,


"마츠카와 잇세이. 이름으로 불러, 키티."


노골적으로 속도를 낮춰 부벼 오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이래서야 이름을 알려 준 의미가 없다며 속으로 욕을 쏟아냈다. 물론,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버텼을 자신은 없다.

남자─마츠카와 잇세이 와의 섹스는 그야말로, 당황스러웠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이토록 열에 달뜬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픔에 맺힌 생리적인 눈물과, 악물어 다물린 입매.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나온 앓는 소리에도 오이카와는 발정하곤 했지만, 오늘 그의 잇새에서 연주된 신음소리는 누가 들어도 야해 빠진 완벽한 교성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아닌 타인과의 섹스에 소극적이었고, 겁에 질려있었다. 그건 마츠카와의 벗은 몸을 보았을 때 확연히 성립해 버렸는데, 아무리 몇번의 경험이 있다고 쳐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몇번이고 무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마츠카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호텔의 스위트룸 영수증을 들이밀었고, 선뜻 '내가 낼테니까 그만', 을 외치지 못한 잠깐의 틈새를 비집을 줄 아는 남자였다. 가슴께를 주무르고 엉덩이를 재듯 몇번 쥐어보는 것 까지는 똑같이 건조했는데, 차라리 오이카와의 것보다도 형편없었다. 탐색하는 듯한 행동과, 값을 매기는 것 마냥 뜯어보는 눈빛. 몇번이고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이와이즈미의 눈앞에 전류가 튀었다.


정말 이래도 될까, 벗어날 순 없어?


'안 돼'가 '돼'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손가락으로 헤집힐 때만 해도 버둥대며 어떻게든 상대를 떨쳐내려 안달이던 몸을 무언가에 꿰인 듯 파드득 떨었다. 천천히 밀고 들어오다가, 숨을 죽이고 웅크린 채 경직 된 몸을 한번에 꿰뚫으며 쳐올린다. 한 순간 뭉쳤던 숨을 헉, 하고 뱉어내고는 시트에 손을 짚고 덜덜 떨었다. 아, 아. 이와이즈미의 견고한 벽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안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불안했다.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고, 결국 모두 뒤에서 낮게 울린 마츠카와의 탄식에 녹아내려 사라졌다. 배 아래쪽이 찌르르 울렸고, 그는 단번에 발기했다.


"흐윽, 아. 잠깐, 잠시만... 아! 안돼, 안돼. 안, 흐읏- 아, 힉...!"
"안되긴, 뭐가? 임신할까봐?"
"개소리, 흐윽... 아, 거기 그만, 흐앗! 아!"


머리가 울리고 뱅글뱅글 도는 것은 술기운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실이 이와이즈미를 한 없이 짜릿하게도, 비참하게도 만들었다. 한 순간에도 수십번은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에 쳐박히기를 반복했다. 당황스럽게도,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이 섹스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휘둘리고 있었다. 안돼, 안돼. 패닉에 빠져 같은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에 마츠카와는 짧은 웃음─아마도 비웃음일 것이다─으로 답하고는 이와이즈미의 목덜미를 보란듯이 깨물었다. 아마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줄창 울려 댄 휴대폰 진동소리가 모든 것을 설명했으리라.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버티다 못해 결국 울음을 터뜨렸음을 알고 시트에 이마를 기댔다. 끔찍하게 당황스럽고, 환장하게 기분이 좋았다.

마츠카와 잇세이에 대해 아는 것은 몇가지가 채 되지 않는다. 일단 흡연자라는 것과, 바지는 돌체 앤 가바나였으며, 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아무렇지 않게 결제한다는 것. 나이는 술기운에 나눈 대화의 내용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갑이라고 했던 것 같다. 씀씀이야 오이카와의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스케일이었지만, 마츠카와는 압도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추리자면, 나이와 이름. 끝. 그럼에도 이와이즈미는 단단히 잘못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크리피한 비교분석질이었지만, 오이카와와 할 때에는 아프기만 했던 것이 지금은 스스로를 쾌락에 절어 울며 불게 만들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락까지 떨어진다. 어쩌면 기분이 붕 뜨고, 옅은 기쁨이 배었다.


몇번째 사정인지는 셀 수 없었다. 다만 진저리치게 만드는 쾌락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파정했다. 눈이 풀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부여잡은 침대시트는 손아귀 안에서 악력으로 온통 구겨져 있었다. 훌쩍이는 이와이즈미는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기절할 듯한 피로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은 것인데, 마츠카와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엉덩이 사이에 질척하게 묻은 정액이 꾸물꾸물 흘러넘쳤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잔뜩 벌려놓은 다리에는 손자국이 남았고 지친 이와이즈미는 기나 긴 행위가 기어코 끝을 맺었음에도 숨을 색색 내쉬며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추스를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백탁액을 가득 머금은 입구가 빠져나가는 마츠카와의 것을 게걸스럽게 조였다. 차갑게 식은 탈진이 체온을 낮게 했고, 마츠카와가 그런 이와이즈미를 끌어안는다. 짧게 이어진 키스 후에, 마츠카와는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지잉─ 짧은 진동이 울렸다.

아마 문자메시지 혹은 음성메시지일 것이고, 발신자는 당연하게도 연락두절을 걱정하며 발을 구르고 있을 오이카와가 틀림 없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는 잡아당길수록 단단하게 매듭을 맺고,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은 힘을 가할수록 깊게 쪼개질 뿐이었다. 스며든 이질감이 거북하지 않다는 것이 이 관계의 가장 큰 모순점일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시작된 침식에 이번에도 눈을 감았다. 아니, 더 이상 가면 안될 것 같아서. 한 발을 내딛으며 되새길 말로는 참으로 부적절하다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버렸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역시 이거, 불륜이려나."
"그러게 그만하라고 했잖아."
"갈라지는 목소리, 끝내주는데. 별로 설득력은 없었다는 거 알지?"


젠장. 이어지는 짧은 불평에 마츠카와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다 알고 접근했으니까. 이와이즈미가 마시던 칵테일의 원래 레시피에서 바닥에 조금 까는 정도인 위스키를 브랜디로 바꿔 반컵을 넣어달라고 주문한 장본인이었으며, 이미 오이카와 토오루를 전제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스며들어, 틈새를 헤집고. 무거운 눈꺼풀을 한 상대에게 달큰하고도 톡 쏘는 첫 필로토크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입술을 열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이유 뿐이었을까, 하고 물으면 할말은 없지만.



이와이즈미는 모든 결정을 뒤로 미뤘다. 눈꺼풀이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그는 어떤 계산에도 응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원색적이고, 제 밑바닥까지 까발려질 것이 분명한 기로 앞에서. 이와이즈미는 몰려오는 졸음에 기어코 눈을 감을 뿐이었다.

'HQ'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이와] 후궁 AU 썰  (0) 2017.04.11
[모브우시] 습작 모음  (0) 2017.04.11
[리에쿠로] 육식의 향취  (0) 2017.04.11
[모브우시] 이상징후의 잔류미만  (0) 2017.04.11
[보쿠로] 극(極)의 파편  (1) 2016.09.19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