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육식의 향취

HQ

2017. 4. 11. 19:16

* R-19 오메가버스 AU, 알파X베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을 기어 오를 땐 조신한 척 꼬리라도 살갑게 흔들어 주는 법을 안다. 그러나 자란 이빨과 손톱이 날카로운 줄 모르는 사자새끼에게는 요령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 결국 꾹 찍어누르는 앞발 밑에 깔린 가련한 피식자는 퇴로가 막힌 채,





쿠로오 테츠로는 종종 자신이 알파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 망상은 결코 오래가는 법이 없었다. 알파와 오메가를 합친 수가 베타의 반도 되지 않는 세상에서 지극히 평범한 베타로 태어나 뛰어난 피지컬로 가끔 알파로 오해받곤 하는 삶은 모로보나 득이면 득이었지 실은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가끔 페로몬으로 장내를 어지럽힌다며 불이익마저 받곤 하는 알파 선수들이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밥 한공기 분량의 억제제를 억지로 씹어삼키는 꼴을 목격한 이후 쿠로오 테츠로는 베타인 제 성별에 한없이 만족하는 편을 택한 쪽이었다.

그는 어딜보나 오메가는 아니었고, 건장한 체격이나 운동신경 등을 보았을 땐 선천적으로 신체적 우위를 점하는 알파와 언뜻 비등비등하다. 여기까지만 놓아도 쿠로오가 '베타'에 만족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는데, 한 걸음 뒤엔 '베타에 만족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죽어, 악─! 너, 흑... 숨, 숨 막힌..."
"숨은 쉬어여."


그게 말 처럼 쉬웠으면, 이 개자식이. 억울함에 받쳐 손끝에 힘을 줘 살갗을 쫙 긁어내자 아릿한 물기가 만져지는 게 기어코 피터지는 섹스를 하기─라는 버킷리스트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칠 날이 온 것 같았다. 찢어질 듯한 격통에 파드득 허리를 떨며 긴장한 몸을 둥글게 말고 헉헉대기를 반복한지 몇십 분이 흐른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어지러울 정도의 호흡곤란은 문제의 주범이 다른 데에 있다. 힘겹게 삼킨 한자락의 숨에 언뜻 사향냄새가 스쳤다. 씨발새끼, 페로몬 거두라고. 짧은 손톱으로 등짝을 긁어 피를 내기 다음은 목덜미 깨물어 송곳니로 구멍뚫기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너 때문에 내가 흡혈귀나 모기 따위라도 자처하겠다며, 쿠로오 테츠로는 하이바 리에프의 허연 목에 있는 힘을 다해 이를 박았다.

페로몬에 정신이 나가 하늘하늘 녹아내리며 풀린 목소리로 자각도 대책도 없는 유혹의 말이나 몇마디 떠드는 오메가의 행태는 여전히 오메가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는 사회에서 그저 놀림감이나, 우스갯소리. 혹은 성적 대상화의 피해자가 될 뿐이다. 쿠로오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손에 넣은 야한 동영상 알집에 잘못 섞여 들어온 금발 남자애가 반쯤 제정신이 아닌 것 마냥 풀린 눈으로 침을 뚝뚝 흘리던 자극적 광경을 열 아홉이 된 지금까지 머리에서 완벽히 지우는 데 실패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엔 종종 사람을 끌어당기는 끝내주는 페로몬을 뿜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만, 그 페로몬 앞에 무릎을 꿇고 녹아내린 제 밑바닥을 까발려야 할 오메가─주로 만약 내가 그 상황이 되었다면, 을 고려해보면 효과는 극대화 되곤 했다─를 떠올릴 때면 그저 평범하게 인구의 대다수 중 반이라는 거대한 수치 내에서 제 짝을 찾을 수 있는 베타라는 위치가 마음에 쏙 들게 된다. 누굴 지배하듯 완전한 우위를 취하거나, 누군가의 발 밑에 무릎이라도 꿇고 기꺼이 수치심을 잊어야하는 것. 어느 쪽도 쿠로오의 취향은 아닌 것이다.

베타인 그로서는 사람에 따라 달거나 쓰고, 때로는 역하다는 페로몬에 제 이성을 잃어야 한다는 건 겪을 일도, 겪고 싶지도 않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 딱 거기까지로 선을 그어두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결코 차선책도 아닌 최선책임을 굳게 믿었으며, 모든 믿음이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은 있을 수 있다는 게 제 얘기가 아닌 줄로만 알았다.





하이바 리에프. 척 보기에도 입 벌어지는 신체조건에 덜컥 홀린 듯 입부신청서를 내밀었을 때만 해도 그 새낀 아주 작은 짐승새끼였다. 짐승새끼가 작다고 덜 위험하겠냐만은, 방심한 쪽에 전적으로 잘못이 있다는 데에만은 부정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경이다.

왜냐면, 이 자식은 좀 문제가 있거든.



머릿속을 서서히 채우듯 밀려들어오는 향기는 보통의 바람에 섞여들어오는 공기보단 무겁고, 침묵보다는 현저히 가볍다. 단, 휘둘려 정신을 못차리게 만든다는 것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자연스레 주변에 녹으면서도 이질적인 것을 한가득 들이키면 다리가 풀리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주 불공평하게도.

쿠로오가 이 불공평함을 영원히 알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엔 다 착각이었다. 어딜 가나 독보적인 새끼들은 있는 법이라는 걸 어린 그가 알지 못했다는 건,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할 문제로 발전할지도 모르겠다.



숨을 멈추면 쉬라고 보채며 어르고 달래고, 정신없이 헐떡이면 그렇게 좋냐며 헛소리를 해대는 발칙한 후배는 평소처럼 배구공으로 머리통을 후려 치려고 해도 그럴 방도가 없었다. 이미 연습시합은 종료했고, 부원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남은 것은 결국 열쇠를 든 주장인 자신 뿐이지 주변에는 그 흔한 배구공 하나 한적히 굴러다니는 법이 없다. 붙잡을 만한 것이라곤 등 뒤에 닿은 딱딱한 사물함의 손잡이나 허공 정도로, 여의치않은 것이 당연할 뿐이라서 쿠로오는 결국 빌어먹을 우성알파의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하이바 리에프는 우성 알파였으며, 우성이라는 아무 것도 아닌 두 글자가 붙은 알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선량한 베타에게 저 꼴리는 대로 양껏 일을 쳐놔도 겨우 페로몬 조금 허공에 푸는 것 정도로 뒷감당이 가능한 놀라운 생명체였다. 쿠로오는 육욕과 페로몬에 지배당한다는 것이 주는 내스티한 원초적임을 조금 혐오하는 편이었는데, 그게 자신에게 적용될 때 스스로가 예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을 긁는다.


"젠, 장. 쑤셔박지─ 윽, 아...!"


크기를 생각하라고. 쿠로오는 순간 초점이 나가 새하얗게 점멸했던 눈 앞에서 별이 튀는 듯한 착각에 고개를 숙여 리에프의 어깨에 이마를 박았다. 단순히 알파라서 인지, 혹은 혼혈이라는 스펙 때문인지,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더니 아랫배를 저릿할 때 까지 마구잡이로 긁어놓으며 출입하던 것 위로 꾹 눌러 앉혀지는 것은 당장이라도 이성을 놓고 울며 매달려도 이상할 게 없을 가혹행위나 다름이 없다. 드문드문 끊기는 목소리가 언뜻 제 귀에도 애달프게 느껴졌다. 뜨거운 숨이 번지는 가운데 쿠로오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페로몬이, 그래. 빌어먹을 그 페로몬이.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베타'의 자각을 뒤흔든다.

쿠로상, 실은 박히고 싶었던 거 아니에여? 자긴 오메가가 아니라며 앙칼짐을 넘어 험악하게 윽박지르던 쿠로오는 저를 제 아랫것 취급하던 리에프에게 반쯤 질려있었다. 뼛속까지 도취된 우월감이 새삼 진짜 '알파'의 정체성을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하게 못 박는 것이다. 어쩌면 쿠로오는 자신이 이 한마리의 짐승보다 아래에서 기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욕지기가 치밀 정도로 내벽을 헤집으며 아랫구멍을 쑤셔대는 것이나, 187cm의 장신을 아무렇지 않게 벽으로 밀어붙여 반쯤 들어올린 채 제 멋대로 속행되는 겁탈같은 섹스나. 뭐가 되었든 결국 온 몸을 잠식하는 페로몬에 질질 울어버려야 한다면 결론은 다 같았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짐승의 읊조림이 낮게 깔리고, 쿠로오가 온 몸을 움츠렸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벽에 대고 몸을 꽉 누른채 아랫도리를 죽 빼냈다가,


"아!"
"힉, 앗─ 기다, 기다려. 흐으.. 앙, 앗!"


젠장, 혹은 빌어먹을. 거칠게 씹어 뱉은 욕지기가 탁하게 흩어졌다. 한번에 쳐넣어져 꿰뚫린 고기마냥 파드득 떠는 게 가련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미 반은 건넌 이후인지라, 멈추거나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리에프가 물기어린 쿠로오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면, 독기 서린 채 저를 노려보던 눈빛이 핀트가 나간 채 흐려져 열에 달아오른 게 확연히 티가 난다. 그제서야 끓어넘치던 소유욕의 밑바닥이 겨우 채워지는 충족감은 분명 버릇이 나빴다. 큰 손으로 쿠로오의 아랫배를 쓸면 제 것이 끝까지 밀고 들어와 볼록하게 부푼 것마저 손끝에 걸린다. 그 감각에 피식자는 몸을 떨며 돋치는 소름에 진저리를 치지만 베타를 상대로 가득 채워 임신이나 시켜볼까, 하는 발칙한 망상에 돌입한 알파는 그저 만족스레 그 살갗을 꾹꾹 눌러보는 것이다.

짐승새끼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그저 꺾어두고 찬찬히 물어뜯으면 그만이다. 언젠가부터 제 페로몬에 울음부터 터뜨리며 달콤한 향기를 뿜어대는 오메가는 눈에 차지 않는다, 예정된 신파극에 시청자가 동원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럼에도 리에프는 제가 느슨해질 수록 긴장하며 벌벌 떠는 검은 고양이의 짧은 바지 밑을 상상하며 아래를 세웠다.

완전히 파묻히자 무리인지 팽팽하게 벌어져있는 엉덩이를 손에 쥐고 슬쩍 벌려 늘인다. 누가 꿇는지 보다는, 누가 꿇리는 지가 더 중요한 거니까여. 입맛을 다시며 화끈하게 긁혀나간 등줄기의 손톱자국을 미묘하게 음미하는 그는 정복하는 것에 통달해있었고, 쿠로오는 가엾게도 물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목덜미에 짐승의 이빨을 박아넣고 가련히 떨었다.



지배자의 명령이 해맑음을 가장했다.

"오메가도 이 것보단 조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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