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도우시] 덫

HQ

2016. 7. 21. 04:11

​* ㄱㅇ님 커미션
** 시라우시 요소 다분.





운동 전과 운동 후, 대개 잘 마른 수건이나 경기복, 여벌 티셔츠나 벗어 둔 교복등이 자리를 차지하던 스포츠백에서 바스락대는 비닐 소리가 요란했다. 와카토시, 그게 뭐야? 여느 때처럼 빵빵해 잘 닫히지 않는 가방의 열린 틈새로 비죽 나온 게 옷자락이 아니라 포장지의 껍데기다. 금박을 입힌 꽃분홍빛에 텐도의 질색보다도 질문이 앞섰다.


"오늘이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던데."
"뭐야, 누가 너한테 그런 것도 가르쳐 줘? 그래서 그게 뭔데?"


초콜릿, 시라부에게 줄.
텐도 사토리는 그제서야 하나를 빼낸 초콜릿을 눈 앞까지 들어올리고 분홍색 포장지의 취향을 질색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취향 한번 촌스럽네.

우시지마 와카토시에게 시라부 켄지로는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직 스파이커만을 위한 공을 올리는 세터. 삼학년을 제치고 주전으로 뛰는 이유기도, 우시지마에게 그토록 맹목적인 이유기도 하며, 또한 우시지마 본인도 그에게 너그러운 이유 역시 된다. 티나게 눈을 빛내며 와카토시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니까. 여기까지가 텐도 사토리의 시라부에 대한 평이었는데, 어쩌면 실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텐도는 그날 오후 느즈막히 노을이 깔릴 때 쯤. 분홍색 초콜릿 꾸러미를 소중하게도 끌어안고 하교하는 시라부의 뒷모습을 보고 제가 서 있는 빙산의 일각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시라부 켄지로는 정말이지 서툴었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십분이 다 되도록 손가락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잔머리를 꾹꾹 누르고 발 끝을 들었다 놓는다. 유리문 위의 풍경소리가 공기를 가볍게 뒤흔들면 언제 부산스럽게 굴었냐는 듯 빳빳이 얼어버리는 것이 서툴기 짝이 없었다.​ 누구라도 배구부 주장과, 그 것이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면 더.어색하게 마주앉기가 능숙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시라부는 버벅대며 흘러가는 시간과, 뚝뚝 끊기는 대화를 견디는 ​​'데이트' 중이었다. 상대는 오랜 짝사랑의 상대였는데, 이 어색한 기류마저 달게하는 감정이란 생소하고도 벅차오르는 법이었다. 제 아무리 서툴더라도.


시라부 켄지로는 그토록 정교한 토스가 시작하는 손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툴었다. 텐도 사토리에게는 한 순간 스치는 감각에 의존할 뿐임에도 완벽하게 정확할 예리함이 있었다. 와카토시를 좋아하지? 일반적인 거랑은 다른 의미로 말이야. 시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능숙하게 예리하기란 이렇게도 쉬운 것이다. 도와줄까? 이어진 물음에도 예정된 대답이 긍정이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을까. 시라부는 여전히 카페 라떼의 빨대 끝을 입에 문 우시지마의 앞에 앉아있었다. 덩그러니.

우시지마 선배. 시라부의 부름에 그가 대답했다. 선배.
귀찮게도 재차 불러 묻는 것에 의아함이 밴 답이 돌아온다. 시라부가 운을 떼는 것을 또 한번 망설였다. 우시지마의 시선이 얼굴에 따갑게 와 꽂혔다. 현재진행형의 의문이 가득하다. 이렇게 둔한 사람을. 바짝 마른 입 안을 축였다. 다음은 아주 느리고, 견딜 수 없을만큼 부풀어 오른 순간을,


저, 선배를 좋아합니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른 시간이 터졌다. 벅차오르는 걸 견디지 못해 시선을 피했다. 귀끝까지 홧홧하게 붉어져 온기가 오른다. 그러니까, 저는. 우물쭈물 쏟아뱉은 감정의 덩어리를 풀다 보면 말이 꼬여 조금 억울해진다. 일반적인 의미랑은 다르게 말이에요. 상대는 말이 없었다. 아주 전까지도 그랬다. 테이블 아래에서 다시 부산스레 바스락대기 시작한 손끝에는 언젠가 조르고 졸라 받아냈던 초콜릿 껍질이 미지근하게 남아있었다. 잘 해보라며 아까 전에 헤어졌던 텐도가 쥐여주었던 것이다. 시라부가 결국에는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의문조차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아른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좀 전까지 제게 와 꽂히던 시선이, 아.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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