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리에/커미션] PS. 장거리 연애

HQ

2016. 6. 10. 21:01

​* ㅎㅅ님 커미션
​** 폰섹스 주의






그는 귓구멍이 작은 편이라 늘 가장 작은 이어폰을 샀다. 하이바. 조그만 헤드 너머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절로 몸이 굳자 귀에서 빠진 이어폰이 툭 떨어져 늘어졌다. 으응. 코를 훌쩍이자 기어코 눈물이 뚝 떨어진다. 리에프는 황급히 다시 이어폰을 주워 귀에 꽂으며 속눈썹이 푹 젖어버린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목소리는 다시 말한다,

─얼른.





날이 더워졌다. 그늘 한점 지지 않아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동그란 캡모자 하나에 의지한 리에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한여름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짧은 치마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잰걸음을 쳐 다가오자 기다리던 사람이었는지 입을 댓발 내민 그가 다소 짜증스레 불만을 토했다.


"늦었잖아여."
"미안, 미안. 많이 기다렸어? 누나가 커피살게."


카페의 출입문은 반쯤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찬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냉방이 과하다며 불편한 티를 내는 여자는 안중에도 없는지 리에프는 제 앞의 블루레몬크런치에 정신이 팔렸다. 긴 다리가 접어도 남아 테이블 밖으로 한참은 삐져나온다. 곱게 갈린 얼음이 녹기도 전에 몇번 휘저어진 빨대에 사라졌다. 오버한 약속시간은 십분 정도였으나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나는 한여름이다. 덥긴 더웠는지 리에프는 음료수를 아작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목울대가 시원스레 넘어가자 순식간에 잔의 삼분의 일이 동났다. 그게 몇번 말을 걸어봐도 여전히 계속되는 중인지라, 대화가 통 이어지지 않아 난감해하는 쪽이 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도 지독하게 일방적이라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는 걸 알지만 여자는 꽤 서운하단 얼굴이다. 냉방이 춥다며 민소매에 훤히 드러난 팔을 문지른지 몇분인데도 옆에 벗어둔 가디건을 건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빈손이 머쓱하게 테이블 위를 배회한다. 많이 더웠냐, 맛있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등. 재잘대는 상대의 질문에 네, 아니여 의 단답으로 응수하던 리에프는 그런 그녀가 제 휴대전화를 집어드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는다.

나 게이에여─그 여자와 리에프는 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은 사이였다. 진득한 고백을 했다가 장렬하게 차인 이후 몇번 침대 위까지 올라가 애정을 배제한 섹스까지 나누는 사이였지만 너나 나나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하지 않는 건 리에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종종 하이바 군을 불러내 부러 시시콜콜 귀찮게 구는 여자를 그 또한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남자랑도 뒹구는 몸인데, 괜찮아여? 그 물음을 던지는 것도, 거기에 오케이를 하는 것도 그녀 하나 정도다. 그들은 아마 그런 사이였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잇세이... 마츠카와? 누구야?"


엑. 무미건조한 응, 아니 만을 되풀이하던 리에프가 오늘들어 처음인 듯한 반응을 보인다. 왜, 문자왔어여? 드디어 빨대에서 입술을 떼어놓은 그에게 그녀가 화면을 보였다. 화면에 찍힌 히라가나 몇글자가 참 건조하다. 뭐해? 리에프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빨대를 물었다.


"애인이에여. 무시해."
"남자친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도쿄 안살아여, 미야기."


미야기? 그렇게 멀리 산다고? 더이상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없는 듯해 길게 묻지는 못한다만 의아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만난 건데? 호기심에 뒤엉킨 질문들에는 대답도 않으면서 방금 도착한 메시지를 넘겨 이전의 메시지함을 훑는 그녀를 또 굳이 저지하지 않는다.

─전화해
─어디야? 집에 가서 전화해
─화상통화.

문자 내용이 뭐 이래? 연인 사이의 밀어라고는 보기 힘든 건조한 연락 통보성 메시지들에 그녀가 눈만 끔뻑인다. 전화를 더 많이해여. 한마디의 보충 설명이 대충 많은 걸 이해시켜 주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전화를 얼마나 하길래. 메시지 창에는 사적인 이야기가 거의 전무했다. 둘이 화상 통화 해? 휴대폰이 한번 더 지잉, 짧게 진동했다. 메시지 알림, 발신자는 이번에도 마츠카와 잇세이다. 미리보기 창에 뜨는 메시지의 내용은 고작 '빨리', 두 글자가 다였는데 너머로 보았는지 리에프가 다 마신 음료수 잔을 내려놓았다.


"누나, 오늘 먼저 갈게여, 미안. 다음에 내가 블루레몬크런치 살게."
"그리고 화상통화 안해요. 이상한 거 시키거든."


리에프는 그녀에게 옆자리에 걸어두었던 가디건을 내민다. 더 있다 갈 거면 추우니까 걸치고 있으라는 이유였다.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그 손에서 제 휴대전화를 빼낸 그가 커피값을 테이블 위에 지폐로 빼어두고는 카페를 나갔다. 지독한 냉방에서 해방된 후는 푹푹 찌는 더위였다.





왜 이렇게 늦어. 여전히 사람을 붙들어 매 얽는 듯한 낮고 단단한 목소리에 리에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밖이었다고 얼버무려 봤자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는 눈치가 아주 빨랐다. 마츠카와 잇세이, 미야기 현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 삼학년. 그렇게 멀리 산다고? 의문이 가득하던 그 질문에 종전에는 그저 얼음조각을 와삭 씹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으나 실은 저도 그게 좋지만은 않다고 대답하고 싶었더랬다. 차로 달려도 꼬박 몇시간을 가는 거리인데 고작 고교생들이 짬을 내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리에프는 이 상황이 절대로 달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누구랑 있었어?"
"아는 누나랑여. 커피만 마시고..."


왔, 는데. 집에 오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켠 노트북의 화면 너머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진짜, 다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라니까. 그 나른한 눈빛 특유의 꿰뚫리는 시선 아래에서 리에프가 말끝을 흐린다. 괜히 입술을 비죽이며 꽂고 있던 이어폰을 핸드폰에서 노트북으로 바꿔 끼운다. 단자를 맞추고 꾹 밀어넣는 순간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벗어."


귀끝까지 확, 열이 몰린다.

화상통화 안해요, 이상한 거 시키거든.─그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은 아닐까 수백번은 생각한다. 작정하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을 때의 그 저음이 소름끼치도록 섹시하다는 게 이유다. 리에프는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마츠카와의 속삭임을 거절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무리 질척하고, 저급한 내용이라도. 가볍게 입술을 깨무는 것은 그가 부끄러울 때 십중팔구 보이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카메라나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느릿느릿 버클을 풀어낸 손가락이 희고 긴 것이 화면을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손끝까지 야하다니까, 익숙하게 다리를 벌리는 연하의 애인은 순수함과 발칙함 사이의 그 어디쯤이다. 하이바, 누구 만났어? 브리프를 잡고 눈치를 살펴봤자 벗지 않고 뭘 하냐는 듯한 가라앉은 눈빛만이 돌아와 리에프는 조금 울상을 짓는다. 아는, 누나 라니까... 뒷말의 늘임은 몇달이나 되었다지만 종종 함께 뒹굴던 그녀의 벗은 어깨나 허리선 따위가 머릿속에 끼어들어 점점 늘어졌다. 흐음, 손끝으로 턱을 쓸며 노골적으로 제 몸을 훑는 그의 시선에, 아. 리에프는 입술을 꼭 깨문다. 아직 전에 물어 난 상처가 미처 아물지 못했지만 이럴 때마다 그는 제가 입술을 물고 있는지 어쩌는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편이었다. 소리없는 강요와 지배에 어린 애인은 결국 티셔츠 아래의 반라 상태로 화면안에 들어찬다.

─섰네.

화르륵 열이 올라 분명 얼굴까지 온통 붉을 것이다. 창피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서 서버렸다는 것이 좀 울고싶은 기분이다. 그에게 스며들듯 길들어 버린 것은 이쪽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리에프는 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와, 가라앉은 시선에 발정한다. 화면으로 제 벗은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창피한 일, 그 이상이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노골적임과 선정성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는 마츠카와에 순간 움찔하여 발기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자애. 네가 전에 말 한 애 아니야? 리에프는 후다닥 발갛게 달아오른 눈을 굴리며 언제 제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잤어? 걔랑?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얼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울상을 짓고 벗은 다리를 벌린 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제 것을 감싸 잡는다. 아무래도 전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떠벌려버린 모양이었다, 가끔 자던 섹스파트너 누나가 하나 있다고. 머리 싸잡고 후회해야 마땅할 일이 분명하다. 늘 이상한 일이었지만, 마츠카와 잇세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언제든 뭐든 밑바닥까지 까발려버리는 건 참 도움이 될래야 될 수가 없는 스스로의 고질병, 버릇이었다. 덕분에 언제나 그의 손바닥 안인 것도 익숙해질래야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고개 들어야지, 하이바. 절로 등이 구부정하게 곱아든 그는 푹 숙인 고개에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까지 머리칼 마냥 희었다. 하지만 마츠카와는 그 속눈썹의 애처로운 떨림보다도 얼굴을 드러내고 제 앞에서 자위하는 애인의 새빨간 얼굴 쪽이 더 마음에 들어하곤 한다. 그러니까,

"잘못, 흐... 했."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수치심을 이기고 겨우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오싹오싹하게 몸이 떨린다. 뭐랄까, 아. 포식당하는 느낌. 리에프는 시간당하는 기분을 견디려 손등을 입가로 올려 살갗을 문다. 얼굴을 거의 가리는 큰 손이 소년다워서 마츠카와가 짧게 웃었다. 물론, 제 웃음소리가 그를 더 진저리치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다. 어떻게 보아도 친절한 축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짓궂고, 능글맞았으며, 지독하다. 리에프는 오늘자 스카이프가 쉽게는 안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혀를 살짝 빼물어 입술을 축인 그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손등을 깨물어도 필터링이 되지 않는 신음소리가 다급하게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할때도 그렇게 울어?"
"아, 아니...응, 아...! 흑. 으읏, 그게."


정직하게 해봐, 알았지?
리에프는 달뜬 얼굴로 기어이 눈물까지 내어보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잇자국이 남은 손등을 내리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블루레몬크런치가 신맛 보다 달기만 해서 입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이틀 전 파란 레모네이드를 신나서 비워낸 건 리에프 쪽이었다. 다행이네여, 리에프는 이틀 동안 더 더워져 필요도 없을 가디건을 가볍게 받아들었다. 나, 혼날지도 몰라서. 커피는 나중에 살게, 그래도 되죠? 제멋대로인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다만, 진짜 막무가내네. 노골적으로 서운하단 얼굴인 그녀에게 리에프가 붉은 피멍이 든 제 오른손 손등을 보이며 경쾌하게 속삭였다.

사실 이미 좀 혼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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