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개화

HQ

2016. 5. 27. 20:44

​​*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약간의 마츠하나 요소.
​** 설정날조 있습니다! 졸업 후 2년이 배경.





─ 히로, 누구야?
─ 응? 오이카와.

오이카와가 웬일로,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오이카와 토오루는 과거의 동료들에 대한 연락이 야박한 편이었다. 만나면 그렇게 말이 많으면서 전화는 곧 죽어도 안한다. 물론 멀쩡한 사내새끼 끼리의 살가운 연락은 낯간지럽다는 그의 의견에 과거 세이죠 삼학년들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이카와 연락같은 거, 실은 별로 받고싶다거나 그런 거 아니잖아? 하면 부정하는 놈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마키 타카히로가 오이카와에게 걸려 온 전화를 붙들고 한참을 놓지 않는 게 의문스러운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마츠카와는 우스꽝스레 굳어진 하나마키의 표정을 구경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으나, 그가 곧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리자 궁금증을 참지 못해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오이카와냐. 뭐야, 왜 이래?"


하나마키 타카히로가 무뚝뚝한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웃어대는 건 드물다. 와중에 예쁘다며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마츠카와에 놀라 겨우 웃음을 멈춘 하나마키가 수화기 너머의 오이카와 대신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츠, 전의 그 꽃다발. 기억 나?





졸업을 하고 배구를 그만 둔 하나마키 타카히로는 작은 꽃집을 운영 중이었다. 마츠카와 잇세이는 그런 하나마키를 이름만큼 예쁘고,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어쩌면 벚꽃색 머리칼 만큼 고운 빛깔의 꽃들을 배구를 하던 큰 손으로도 참 살뜰히 돌볼 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근 삼개월만에 하나마키의 핸드폰을 울린 것이.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소꿉친구의 선은 옛날에 넘었으며, 졸업을 하자마자 짐을 싸들고 집을 합쳐버렸다는 소식은 고교 삼학년 그들과 같은 코트 안에서 뛰었던 동기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안부인사의 첫마디를 오이카와 토오루로 시작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몇초간 흐른 짧은 침묵으로 사태를 파악한 하나마키는 그 화제를 후회했었다.

이와이즈미는 아마 극심한 다운텐션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어딜 봐도 제 에이스 스파이커의 박력이 아니라며 놀림조로 말을 이어도 그 끝이 어색했다. 오이카와가 괴롭히디? 상황 파악에 둔감한 마츠카와의 옆구리로 하나마키의 팔꿈치가 작렬했다. 억울하다는 듯 늑골을 감싸 쥔 마츠카와의 다음말을 막으며 어색하게 웃는 이와이즈미에게 하나마키는 조심스러운 안부를 다시 물었다.

"걱정시켰냐, 미안. 그냥 기분이 조금... 어디 갈 데 없,"

이와이즈미에게 이런 식의 말을 듣는 건 손에 꼽는다. 오이카와랑 싸웠네. 삼년을 보고, 이년을 더 진행중인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이리로 와, 만나자.





그 날 유난히 청명한 하늘 아래 오랜만에 뭉친 셋이 간다는 곳은 결국 하나마키가 자주 가는 꽃시장이었다. 이제는 진짜로 다 커버린 사내새끼 셋이서 갈만한 데가 많지는 않지만, 이건 좀 심각하게 예상 밖인데. 백팔십이 훌쩍 넘는 사내들이 옹기종기 모여 걷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을 물리지도 않는다. 네가 봐, 진짜 괜찮아. 여린 꽃잎들은 세게 쥐면 찢어져버릴 것 마냥 부드럽고 얇다.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이와이즈미에게 어쩌면 가장 난감할지도 모르겠지만, 꽃이 추천하는 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고 마츠카와는 말한다─네가 데려왔는데, 나쁘다고는 생각 안하지. 이와이즈미가 그날 들어 드물게 피식 웃었다.


안면이 있는 듯 색색의 꽃들을 고르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가 오가는 복작복작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의 텐션은 언뜻 보아야 평소와 같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 많지 않지만 불평도 없는 듯 했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눈에 틈만 나면 멍하게 멈추는 시선이라던가, 대화 중의 다른 생각. 흐트러진 집중력 같은 것들이 안보일 리 없다는 거 알면서도.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들이 알 방도가 없었다만, 결론적으로 그 날의 이와이즈미는 평생 본 이와이즈미 중에 가장 최악의 우울함을 지고 있었다. 무슨일이 있냐 물으면 아마 그는 부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이 묻지 않았고, 하나마키는 방금 사 온 싱싱한 꽃 무더기를 골라 꽃다발 하나를 만들었었다. 잎사귀의 녹빛을 모두 묻어버리는 화려하게 핀 꽃들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꽃다발이었다. 이와이즈미가 장미나 튤립같은 눈이 아플 붉은색 꽃들과 어울리는 남자는 아니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다.

결국 하나마키가 고른 꽃들은 조팝과 수국이었다. 꽃에 대해 문외한인 마츠카와와 이와이즈미는 그 동안 그저 눈만 깜빡일 뿐이었지만, 결과물엔 굉장히 만족했던 걸로 기억한다. 시커먼 남자들이 들고 대중교통에 올라타기에도 녹색과 흰색이 자연스레 섞여든 꽃다발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여전하게도, 그들은 '무슨 일이 있는진 모르겠지만'이란 말 한마디로 이해를 타협하는 친구사이였다.





그 다음은 뭐, 술자리였다. 빤하지 않은가. 앉은 자리에서 술병 한아름을 작살낸 남자들은 왕년에 배구 좀 했던 스포츠맨들이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주량으로 술자리를 그야말로 조져놓더니, 셋다 취해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꽃다발을 챙겨 헤어졌던가. 작별인사나 거하게 할때는 표정이 밝아보이기에 집에 잘 들어갔냐던가 따위의 인사는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불쑥 잡은 약속으로 불러냈던 이와이즈미를 돌려보낸 게 아마 이주일 전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이주일이나 됐다고? 시간 개념이 없는 듯한 마츠카와는 뒷전이고, 하나마키는 다시금 터지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거 벌써 시들었대."

아직 2주도 안됐는데. 꽃이 시드는 시기 따위 마츠카와 잇세이에게 별로 외워야 할 것이 되지 않았지만 그날 만든 꽃다발의 반은 그들의 침대 옆 협탁에서 잘만 피어 있다. 벌써 시들었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히로, 네가 너무 잘 키우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하기에 하나마키는 딱히 그 꽃에 정성을 쏟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수화기 너머의 오이카와가 징징대는 소리가 볼륨을 키워놨더니 다 들린다. 맛키, 어떡해. 이거 벌써 고개 숙여! 오랜만의 전화에서 제 할말만 하는 오이카와가 지나치게 익숙하다. 고개를 숙인다니, 표현도 딱 누구같아. 수화기를 쥐고 온갖 호들갑은 다 떨고 있을 철없는 주장이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눈에 선했다.

그래서 나 지금 좀 짜증나는 것 같아. 응, 나도. 결국 수화기를 건네받은 마츠카와의 표정이 누가봐도 짜증을 담고 있다.


"우리 건 잘 자라고 있거든? 네가 또 뭘 잘못 만졌겠지."
"그런 거야? 난 이와쨩이 너무 좋아하길래! 이거 고개 숙인 거 보면 이와쨩이 실망할 거야, 맛키이. 어떻게 해?"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구요... 하나마키는 웃음이 터지는 와중에도 이 닭살커플에 대한 짜증이 치미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기껏 조심스레 '그때 싸운 건 화해했냐'고 물었더니 너무도 깔끔하고 청량하게 '그런 적 없는데?' 라는 대답을 들은 후로 더 그랬다. 분명 오이카와의 생각없음이 꽃에 치명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이와쨩 오면 어떡해애, 하고 말꼬리까지 늘려가며 해결책을 강구하는 그의 대사 뒤에 짙게 깔린 팔불출의 입김이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하다.


"말 늘이지 마라, 짜증나니까."


마츠카와의 짜증에 네, 하고 바로 입을 다무는 오이카와는 아무래도 달라진 게 없는 듯 하다. 이와쨩이 너무 좋아하길래, 라는 맥락으로 봐서는 이와이즈미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뭔갈 만졌다는 뜻이다. 또 어떤 멍청이 짓을 했는지 들으면 정말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증명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뭐 만진 거 있어?"
"아니? 영양제도 주고, 어제 진짜 더웠잖아. 얼음도 띄워주고 다 했는데! 얘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으, 순간의 그 끔찍한 정적이란. 수화기를 넘어 온 싸늘함에 오이카와가 눈치를 살살 보며 맛층? 또한번 말꼬리를 늘였다.


"답이 없다, 끊자."


맛층! 다급하게 부르는 데에 덜미를 잡혀 한마디는 더 들어주잔 생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진 않았지만, 오이카와는 여전히 상식을 뛰어넘었다. 영양제에 얼음이라니, 이와이즈미가 안 말렸어? 아니, 물어볼 것도 없이 이와이즈미가 자리를 비운 새에 만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비타오백 같은 걸 부어준 건 아니겠지. 제가 엮은 꽃다발의 꽃들이 겪었을 고생에 눈물이 차오른다며 한참을 배를 잡고 웃어대던 하나마키가 골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너무 웃었더니 눈물 나네.


"얼음 띄워줬냐, 더워서? 응. 그래서 시원했대? 병신. 원예도 연애도 젬병인데 이와이즈미는 널 왜 좋아한다냐."

"맛층, 오이카와 씨 취급 너무해애... 이거 그래서 다시 못일어나? 응?"

"응."


딱 잘라 말하는 마츠카와에 오이카와의 징징거림이 결국 MAX치를 찍었다. 너 말이야, 그렇게 생각없는 주제에 팔불출인 거. 민폐야. 결국 하나마키는 2주 전 이와이즈미에게 불러주었던 꽃집 주소를 오이카와에게 고스란히 다시 읊어야했다. 이번엔 반이 아닌, 꽃다발 하나를 사가는 그에게 사랑을 담아 어깨를 두드려─몇대 패─주고, 물병에 제발 아무 것도 넣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너무 세게 쳤나, 눈꼬리에 눈물까지 삐죽 매달았으면서 좋다고 방방 뛰며 꽃집을 나가는 오이카와는 한창 사랑중인 것 같았다.
진짜 싫다, 이와이즈미도 그렇게 우울해하면서 저런 눈이었는데. 아, 하여튼 닭살이다.





아마 조금 싸웠었던 것 같다. 아무리 죽고 못살아도 스케쥴에 치이고 짜증은 쌓여가는 와중에 하루 종일 부대끼려니 몇년을 봐 온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라도 다툼이 조금 크게 번지더라. 싸움의 이유라던가, 과정. 그들은 그런 것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이와이즈미가 화를 내다가 뒤를 도는 순간부터 양쪽은 후회했고, 그 정도의 절실함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만들었는지 이와이즈미를 위해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꽃다발을 안고 귀가한 그에게 밑도 끝도 없이 사과하며 입을 맞춘 건 오이카와였고, 한시의 싸움의 종결이 미적지근했음을 아니꼬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와쨩, 뭐해?"
"멍청카와. 꽃병에 비타오백 부었다며?"
"엑? 아니야! 미에로 화이바였는... 누가 그랬어! 맛키가 그래?"


아주 고해성사를 하지 그래.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오이카와가 익숙하게 웃어넘긴다. 이와쨩, 내가 꽃다발 새로 해왔어. 자연스럽게 뒤에서 끌어안아 허리에 팔을 감는다. 졸업 전이나 후나 질색하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요즘은 많이 봐주는 편이라 가만히 있어준다. 거기에 또 신이 난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뒷목이며 어깨에 강아지마냥 부비적 부비적, 찰싹 달라붙자 이와이즈미는 귀찮아하면서도 능숙하게 그를 떼어냈다. 수국의 꽃잎이 전보다 더 싱싱한 걸 보면 저 멍청이가 분명 비타오백, 이 아니라 미에로 화이바로 사고를 치고 울면서 달려가 새로 공수해 왔을 것이다. 오이카와 정도의 행동반경은 다 꿰고 있는 이와이즈미가 화분을 갈아야하니 비키라며 질리지도 않고 들러붙는 오이카와의 정강이를 툭 찬다.

최근 이와이즈미의 관심사가 조그마한 화병이라는 건 굉장히 의외의 면모이면서도 어울렸다. 집에 늘어선 조그마한 화분들은 순전히 이와이즈미의 책임 하에 있다. 도자기로 된 작은 화병이나 그릇, 화분들을 모아 늘어놓고 창가에 줄을 세운다. 안어울릴 줄 알았는데 그런 모습까지 너무 예쁜 건 아마 내 눈에만 그런 게 아닐 거라는 게 오이카와의 의견이었다. 새로 해 온 꽃을 담을 화병이 없네. 입술을 삐죽이며 유리병으로 꽃다발을 옮겨담던 모습까지 어찌나 예쁜지. 오이카와는 어쩌면 콩깍지가 약간은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와쨩, 생일 선물로 뭐 사줄까, 화분?"


그러고보면 이와이즈미의 생일이 그리 멀지 않았다. 십년을 넘게 본 사이에 생일 챙겨주는 걸 사양할 체면차림 같은 건 남아있지 않은지 이와이즈미가 잠깐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기쁜 표정인데. 오이카와는 제가 제시한 선물이 그의 마음에 들었음을 알고 헤실헤실 웃는다.


"너는? 네 생일엔 뭐해줘야 하냐."
"내 생일은 많이 남았는데 벌써 고민하는 거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물어봐, 빨리 말 해."


이와쨩 못생겼어. 못생겼는데 예쁜 화분 좋아하는 거 너무 귀엽다고. 뽀뽀한 번 해주면 가르쳐주겠다며 오이카와가 입술을 내밀었다. 전 같았으면 헛소리 하지 말라며 한대 맞았겠지만...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한대 맞는다. 이것도 연륜인지 딱밤이라도 날리려 날아오는 손을 휙 피한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꽉 끌어안았다. 입 밖으로 내면 분명 발로 차이겠지만, 이와쨩 너무너무 좋아.



"그럼 나도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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