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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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3. 22:35

​* 가슴만질래?





아까부터 쉼없이 오물오물, 붉은 입술은 바쁜 움직임을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리에프는 쿠로오에게 끊임 없이 불만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삼학년이라 바쁜 쿠로오와의 데이트는 오랜만인 만큼 달달했지만,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넥타이를 깜빡 잊는다거나 돌부리에 발이 채이는 등 아무튼 징조가 안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불안불안 한 게.

"테츠! 오랜만이다, 옆엔 누구야. 친구?"

그 여자는 처음부터 인상이 별로였다고, '테츠'라는 애칭을 부르는 것을 듣기 전에는 하지도 않던 생각을 굳이 끄집어낸다. 저렇게 새카만 머리는 쿠로오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데, 하는 생각은 했던 것도 같지만. 리에프가 ─물론 순전히 제 기준에서─ 너무 예쁜 연인에게 목말라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나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둘에게만 시간을 내는 것이 벌써 며칠만이냐며 그 큰 키에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려대는 리에프가 쿠로오도 싫지만은 않았는지 열렬히 불타는 중인 한 쌍의 커플이었는데. 안면이 있는 듯 반갑게도 부르며 다가왔던 여자는 쿠로오와 꼭 닮은 흑발이었다. 부르는 호칭이 제가 했다면 어디 한 대 후려맞을 듯한 간지러운 애칭이었다는 게 일단 리에프의 심사를 한껏 뒤틀어 놓았다.

"음, 아는 동생입니다."

아무리 곱상하다 한들 194cm와 187cm의 연애사에 대다수가 찬성하지도 않거니와, 일반적 시선을 받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 따위는 분명 머리로 이해하는 리에프였지만 이미 배알이 단단히 뒤틀린 그에게 쿠로오의 대답이 뇌리에 꽂혔던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 동생이었어? 하는 여자의 반응이 유난히 짜증스러웠던 것도 절대 무리가 아니며, 지금까지도 맴도는 그 높은 톤의 목소리에 신경이 예민한 것도!

거기서 달리 뭐라고 대답을 했겠어, 연인이 게이라는 걸 소문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분명 현명한 대답이었고...


음,
아는 동생.


시무룩. 리에프의 상태는 달리 표현할 만한 마땅한 단어도 없이 극심한 다운텐션이었다. 귀나 꼬리가 있었다면 분명 힘을 잃고 축 처져 늘어져 있을 것이다. 누가봐도 시무룩한 그 표정에 쿠로오는 하마터면 상황도 모르고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물론 그랬다면 완전히 토라진 리에프는 울상을 지으며 괜찮지도 않은 얼굴로 괜찮다며 귀가해 혼자 속상함에 온갖 삽질을 다 해댔을 것이 분명하지만.

불평과 불만이 뭐가 그리 많은지, 리에프는 아직 오월의 초여름에 그리 찌지도 않는 날씨를 푹푹 찐다며 불만을 토하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짜증나여. 음료의 얼음은 왜 이렇게 빨리 녹는 것이며, 카페 안은 에어컨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불과 이십 분 전, 이 카페에서 의문의 여자를 마주하기 전인 그 시점에서 리에프는 분명 여름의 직전이라도 냉방이 과하다며 춥다고 했지만 스스로도 기억을 못하는지 여전히 더위에 화살을 돌리는 중이었다. 얼음이 녹아있는 것은 아까부터 사소한 것에 크고 작은 짜증을 꿍얼이느라 꼭 저 같은 취향인 딸기 라떼를 입에도 대지 않았음이 이유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리에프."

"예?"

"우리집으로 가자."



집이여? 몇달을 사귀었지만 결코 자택에는 들이려 하지 않던 쿠로오가 할 제안으로는 갑작스럽다. 하지만 기회는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고, 결국 고개를 끄덕인 대형견을 끌고 쿠로오는 기어코 저희 집 현관을 열었다. 결국 여기까지 얠 들이는구나 싶어 따라오는 작은 한숨은 무시한다. 연인관계를 허락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 힘든 타입인 쿠로오는 유독 사생활의 오픈에 짜게 굴곤 했는데, 개인공간 또한 그 범위 안이었다. 아무튼 금단의 영역이었던 곳에 입성한 것이 기분 좋은지 눈이나 굴리는 리에프는 정말 좋은 내색을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게 부던히도 티가 났다. 어디가서 거짓말 대회나 그런 거, 관심가지면 안될 놈이다.

뭐, 마실 것 좀 줘? 에, 여전히 꽁해 있으신 겁니까. 응?

리에프의 손에 들린 건 어쩌다보니 열아홉까지 간직하는 곰인형 키 홀더다. 저런 아기자기한 취향 아닌 거 알면서. 아무튼 그런 깜찍한 물건이 제 사유공간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거겠지. 그렇게 열심히도 탐색 중이면서 아직도 토라짐 모드를 해제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그래도, 아는 동생은 너무했고. 배구부 후배라던가, 물론 그것도 별로 기분 좋진 않았겠지만 뭔가... 음.

이미 열여섯번은 들은 이야기인데. 쿠로오는 열여섯 번째 한숨을 쉬며 컵에 오렌지 주스를 넘치게 따랐다. 아까부터 쉼없이 오물오물, 붉은 입술은 바쁜 움직임을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분명 귀엽다거나 꽤 그런 축의 토라짐이다. 그래도 뭐든지 적당히. 너무 길게 꽁해있는 건 그다지 남자답지 않은데.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를 열여섯번은 했던 쿠로오가 한번의 추가적 사과멘트를 반복하며 주스를 내밀었다. 리에프는 어떤 상황에서든 쿠로오가 주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았겠지만 좋아하던 딸기 라떼를 거의 물리고 온 차였기 때문인지 곧바로 입술을 가져다댔다.


"가슴 만질래?"


풉, 하고 거하게 다시 뱉어냈지만.

오야? 평소에도 장난이 넘치다 못해 뚝뚝 흐르는 연인이 질나쁘게 상대를 곯릴 때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리에프는 입가의 주스를 급히 훔쳐냈다. 저 성격 나쁜 삐딱한 미소에 반한 게 존나 맞지만, 당하는 거랑은 다른 문제죠. 방금 뭐라고 하셨냐고 묻는 목소리가 떨리고 횡설수설인 게 스스로도 느껴졌는지 리에프는 부끄러운 대사를 친 게 자신도 아니면서 귀가 터질 듯 붉었다. 하여간 아직 어리다니까, 쑥맥도 아니고.

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나. 이러면 화가 풀린댔는데. 가슴, 만질 거냐니까? 정작 부끄러운 대사를 해대는 쪽은 그저 놀리는 게 재미있는 듯 눈 하나를 깜짝 안한다. 오렌지 주스가 튀었지만 얼른 휴지로 찍어내서인지, 색이 어두워서인지, 튄 주스가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이라서인지. 옷에 얼룩은 안남아서 다행이다. 리에프는 노란 물이 든 휴지를 얼른 테이블 저쪽으로 치웠다.


"만질래여."





만질래여, 이리와. 꽤 단호한 어조에 낄낄 웃던 웃음의 반의 반 정도가 쏙 들어갔다. 아니 뭐어, 미안한 것도 있고. 만지지 말라고는 안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쟤가 저렇게 진짜 사자새끼라도 된다는 듯 눈을 번뜩이면 약간 쫄기는 하는 것이다. 아까 그 상황에서 달리 댈 다른 말이 없었다는 건 양 쪽 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정말 딱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 뿐이기에, 쿠로오는 결국 군말 없이 교복의 니트 조끼를 벗어던져야 했다.

"너무 덥석 무는 거 아니십니까? 하이바 군."

"시끄러워여. 나 사실 아직 짜증나고..."

어쭈. 말은 잘한다. 하이바 리에프의 특기가 선배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르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으르렁대는 그는 꽤 박력이 있어서, 어쩌다보면 늘 휘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고보면 나 정말 앞뒤 생각 안하고 막 던졌구나. 멈출 기미도 없이 꿍얼거리는 좁은 속과, 어디서 주워들었던 섹스어필성 짙은 농담 반의 사과 방식. 어쩌면 볼 수 있을 리에프의 당황한 모습. 고작 그 셋 정도만 훑고는 저질러 버린 터라 뒷감당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웬만한 스킨십에는 면역이 있는 터라 계집애마냥 부끄러움에 꺅꺅대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쿠로오는 순순히 리에프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앉으며 등을 기댔다. 187cm가 결코 작은 키가 아닌데 품에 쏙 들어가는 느낌이 유쾌하지는 않다. 부각되는 덩치 차이에 다 큰 남자 둘이 뭘 하는 건가 싶다가도 무작정 끌어안고 가슴께에 턱 놓이는 큰 손에 할 말이 멎었다. 아, 이게... 생각보다는 많이 부끄러운 거더라.

"어이, 지금 어디로 손이 들어오는 겁니까?"

"선배, 자꾸 그러면 소파 위에서 할 것 같지 않아여? 그랬다간 좀 곤란해질 것 같아서 말해드림다."

"이 자식이..."

발칙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쳐대는 리에프를 한 대 쥐어박기엔 정말 단단히도 끌어안겼다. 어떻게 해도 몸을 돌려 적당히 한대 칠 각이 나오지를 않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굉장히...

주먹이 두근대는데.

그것도 아주 많이. 소파 위에서 하긴 뭘 해? 쿠로오는 얼이 빠진 채 어이 없다는 듯 단추가 반쯤 풀려나간 와이셔츠 깃을 모아쥐었다. 설마, 맨살을 더듬어 댈 생각이신 거야? 위에서부터 다 풀려나가 앞가슴이 다 드러나는데 멈출 생각을 않고 기어이 배 부분의 단추까지 여유롭게 다 풀어내는데 거의 뜯겨나가는 줄 알았다. 뻔뻔하게도 셔츠깃을 여미는 중인 제 손을 치워내기까지 한다. 아니, 맨살 대 줄 생각은 없었거든요?





하이바 리에프는 혼혈이라는 스펙 탓인지 뭐든 일단 평균 이상의 사이즈를 가졌다. 물론 게 중에서 가장 좆같은 건 따로 있지만, 오늘은 잡을 때 꽤 편하다고 생각했던 그 손마저도 짜증스러웠다. 한 손에 가슴을 다 덮고 느릿하게 주물러대기 시작하는 게, 모로보나 어딜 보든 신났다. 아니, 맨살... 무어라 반박을 하려들면 조금 더 몸을 밀착하며 끌어안고 노골적으로 굴었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 더 뻣뻣할 수도 없도록 어색하게 경직된 몸을 이완시키려 부던히도 노력중이었다. "놔주면 안될까," 하고 빈다던가, 이제와서 강경하게 "놔, 씹새끼야"를 외친다던가. 상황을 타개할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하는 중인 쿠로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손길이 점점 노골적으로 짙어졌다.

음, 아니 어쩌면... 말을 잘못 한 걸지도 몰라. 명백하게 이제 와서 하기엔 늦은 후회다.

"아, 그렇게 ...집요하게 굴지 말라,고."

아무래도 운동을 하다보니 근육이 붙긴 했다만 여자도 아니고 잡히는 것도 없는 가슴을 굳이 만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쌍수들고 환영해줄줄은... 몰랐다기 보다는 알면서도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주스까지 뱉어가며 당황해줄 땐 꽤 귀여웠는데. 천천히 가슴을 주무르는 노골적 행위에 열이 확 올랐다. 귀가 화끈거리는 이유는 이미 터질 듯 붉어졌음이 틀림 없기 때문이고.

아니 애초에 맨정신으로 그런 제안을 한 건 대충 만지다 말겠지, 라는 전제 하였다니까?

"아파!"

"엑, 좋아하면서."

대체 누가? 잘 잡히지도 않는 살집을 쥐고 느릿하게 주무르다가 아예 쥐어짜듯 손아귀에 힘을 주자 아파서 버둥버둥, 빠져나가려는데 이미 자세선정부터 글러먹었다. 꼼짝을 못하고 놔줄때까지 손 놓고 당해야 할 판인데. 말랑하지도 않아서 잡히는지 부터가 의문이다만, 집요하게도 잘만 만져대는 통에...

"선배, 유두 섰다."

닥쳐. 감기에 열을 앓을 때마냥 확 뜨거워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게 다 느껴져 결국 한 손으로 눈을 가려 덮었다.

"네가 그렇게 만져대니까 그렇, 힉."

"힉?"

방금 그 바람 빠지는 소리 뭐예여? 짐짓 모르는 척 샐샐대는 리에프가 방금 꼬집었던 유두 주변을 살살 문질렀다. 아, 야 잠시만. 당황함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쿠로오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뻑가게 섹시하다며, 리에프는 다 드러난 그의 뒷목을 물었다. 쉿, 조용히 해여. 갈 곳 잃고 방황하던 손이 제 교복자락을 쥐는 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능글맞던 연상이 당황할 때가 이렇게 예쁜데, 심술부리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꼬집지 마, 죽을... 아프다고! 아, 흣..."

"아무리봐도 아프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여."



좀 곤란해질 것 같다는 걸 알긴 아는데,
오늘은 소파에서 해야될 것 같져?​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