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연하남의 비공론적 연애담

HQ

2016. 5. 9. 13:14

​* 하이바 리에프 X 쿠로오 테츠로
** 나 쨩 주는 리퀘스트





야해요.


뭐? 대번에 폭삭 구겨지는 쿠로오의 얼굴 표정에서 하이바 리에프는 제 소리 없는 속삭임이 제대로 전달되었음을 알았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방글방글 웃으며 네트 저편의 주장을 바라보는 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사이좋은 광경이 아닐 수 없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 가려진 실상에 쿠로오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배구부, 그것도 고교 남자 배구부 내의 연애는 모로보나 아무튼 흔한 일은 아니다. 호모포비아까진 아니더라도 동성애에 크게 생각이 없던 쿠로오가 어쩌다 발칙한 후배에게 코가 꿰여버렸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성질을 부리면서 결국 질질 끌려다니는 연애는 벌써 시작으로부터 세 달이 넘었다.

말하자면, 선 사고 후 연애였다. 보드카를 물처럼 마시는 러시아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라는 점이 어떻게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쿠로오는 그만한 술꾼을 처음봤더랬다. 딱 자르면 '잘 마신다'의 축인 쿠로오와 둘이 앉아서 몇병이고 비우며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게 열일곱이란 사실에 괜히 발끈해서 무리하다 눈 뜨고 나니, 일을 쳤던 상황이었다. 세상에 내 인생에서 그렇게 좆같던 날이 없었지. 아직도 19년 중 최악의 날로 추억하는 그 날 이후, 형태는 이상하다만 둘은 연애같지 않은 연애를 하며 나름의 소유욕으로 서로를 옭아매는 중이었다.

그 때부터 하이바 리에프를 건전한 상대로 본 적은 맹세코 단 한번도 없었다.

눈만 깜빡이며 여덟병을 아무렇지 않게 비워낸 것도, 숙취에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더니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도. 아무튼 저 새끼가 부뚜막에 존나게 잘 기어오른단 것만 빼면 결코 얌전한 고양이는 아니라는 걸 쿠로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열일곱의 성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때도 없이 틈만 나면 제 손이든 허리든 더듬어대려 난리인 리에프에게 쿠로오는 곧잘 욕설을 쏟아냈다. 그 내용이 한번도 얌전했던 적은 없지만 그런 쿠로오에게 '욕하면 더 섹시하다' 따위의 헛소리나 뱉는 걸 보면 리에프는 답이 없다.

버릇없이 주장 머리 꼭대기에나 기어오르곤 하는 후배는 정말이지 눈치도 없고, 경우도 없고, 답이 없고,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질색을 해대는데 오히려 더 달라붙는 걸 보면 마조히스트가 아닐까 하는 고민은 이미 두어달 쯤 전 어느 날 밤에 그 반대라는 사실이 증명된 후였다. 새디스트 기질 마저 충만한 리에프에게 어찌 됐건 밤마다 시달리는 건 쿠로오였고, 그런 상황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도 맞았지만 아무튼 버릇이라면 약에 쓰려해도 없는 새끼다.


야하다구여!


네트 가까이 와서 손짓하기에 연습시합 중 뭘하는 짓이냐고 쏘아붙이려 다가갔더니, 제게만 들리게 속삭이고는 저 멀리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엿같은. 주장의 위치에서 연습 중 표정관리를 하자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쿠로오의 기세가 누가 보아도 흉흉하다.

대체 어디가 야하다는 건데. 쿠로오는 187cm 남자에게 발정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열일곱의 치기를 이해하기 힘들때가 많았다. 몸을 섞다 보면 제 정신이 아닌 것은 맞지만, 보이는 데에 자국을 남기지 말라고 오십번을 말해도 너무 야하다며 목덜미를 물어뜯는 저의가 처음에는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저쪽도 반쯤 정신을 놓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에 욕정하는 건지, 귀여운 구석이라곤 없는 제게 리에프는 꽤나 절박하게 굴곤 했다.

리에프와 쿠로오 사이에는 의외인 전제가 하나 존재한다. 몸만 섞은 관계는 아니라는 것. 일단 나한테 반했다는 사실에서 쟨 취향이 망했어.

그런 무지막지한 취향을 가진 리에프는 다른 의미에서 위험하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지만, 이미 기어오를 건 다 기어오른 마당에 얌전하지도 않은 사자새끼는 점점 머리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점점 버릇이 나빠지고 있었다.


블로킹, 뛸 때 배 보여요. 다음에는 거기에 키스마크 찍어도 돼?

머리채 잡는 거 싫어해여? 진짜 한번만 잡아보고 싶은데. 딱 지금 그 눈빛으로 올려다 보면 죽이겠다.

선배 이래서 나 없으면 어떻게 해여. 다른 남자한테도 이렇게 조이면 안되는데.

아무리 봐도 바지 너무 짧아. 허벅지 다 보이는데, 그거 너무 섹스어필이라구여.

섹스하자.


쿠로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점점 나빠지는 리에프의 입버릇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거기서 더 나빠질 수 있는 거지? 뭐라고 반응하든 섹시하다며 받아치는 데에 골이 다 울렸다. 당황해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데, 들키면 일단 그날 밤 진짜로 베드 인 하는 베드 엔딩(Bed Ending) 이 나는 수가 있었다. 어떻게 무덤덤하려 해도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 아무리 그 쿠로오 테츠로라도 귀를 붉히는 것을 보는 게 리에프의 낙인 듯 하다.

때와 장소라도 가려주길 바랄 게 아니지만 요만큼은 바랐던 것 같다. 사람이 바글대는 지하철에서 낮게 속삭이는 음담패설들에 누가 들었을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지쳤다. 결국 아무 말 못하고 발을 꾹 밟는다거나 배를 팔꿈치로 치는 걸로 반박을 대신했지만, 가끔은 진짜로 목소리로 강간당하는 기분이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신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만.

연습시합은 보통 부원들 끼리 팀을 나눠 코트를 반씩 차지해 진행된다. 오늘은 팀을 나누기에 드물게 제비를 뽑은 날이었다. 리에프가 코트 너머로 건너가 버린 것에 안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면 제 다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거나, 헤실대며 입모양으로 온갖 천박한 단어들을 입에 올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상당히 열이 올랐다. 저게 진짜 죽으려고. 침착함을 잃고 그 쿠로오 테츠로가 미스 낸 두개의 블로킹에 켄마가 실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본다. 어쩐지 꿰뚫리는 기분이니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진짜 꿰뚫린 거라면 좆되는 거니까 말 하지 말자.

미안, 미안. 결국 던진 건 저쪽의 사자새끼를 의식적으로 완전히 외면한 짧은 사과였다.


연습 시합 종료. 결과는 이어진 듀스와 그걸 끊어낸 쿠로오 쪽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아무리 봐도 이쪽이 유리했는데, 길어졌잖아... 입을 삐죽이는 켄마의 불평 포인트가 어딘가 엇나갔지만, 하는 말은 틀린 게 없다. 제비는 지나치게 치우져져 뽑혀 나갔다고 할 만큼, 삼학년이 이쪽에 몰려있어 결국 임의로 리베로를 저쪽에 보내줘야 했던 것이다.

쿠로, 집중 안됐던 거 티났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결론이 그거다. 응, 미안해. 머쓱하게 뻗친 뒷머리를 긁적였다. 속으로 하는 중인 생각은, 리에프 이 자식.


너, 때와 장소 안 가릴래? 순간 블록을 뛸 때 보일 허리께가 신경쓰여 냈던 종반의 미스에 쿠로오는 사실 신경이 예민했다. 너 때문에 실수했잖아. 경기 중에는 경기 복을 바지 안으로 고정하니 그럴 일이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사소한 이유로 실수했다는 사실이 꽤나 심기를 건드렸는지 어조가 날카롭다.

질책을 예상했는지 낯빛 하나 안바뀌는 게 이렇게 얄미울 수가 있나 싶다. 한 대 칠까? 진지한 고민에 휩싸이는 것이 당연했다.


쿠로상, 야한 말 듣는 거 싫어요?

난 좋은데. 안 그런척 하면서 귀 빨개져서 귀여운 얼굴 하는데 하면 안돼여? 나 그거 보고싶단 말이야.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닌데. 결국 앙앙대면서 다리 벌리는 건 쿠로상이란 말예여.

너무 우느라 기억안나져? 나, 다 맞는 말 하는 거예요.


쿠로오 테츠로는 0.3cm만 더 크면 188cm인 장신이었다. 웬만하면 모두의 위를 점하는 신장을 가지고늘 맹수같은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연하남은 꽤 성가신 감이 있었지만, 그게 극대화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럴 때. 쿠로오는 리에프에게 끌어안기면 저 같은 장신이 품에 쏙 들어가는 그 기분이 낯간지럽다 못해 유쾌하지 않았다. 왠지... 왠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잖아. 어깨에 턱을 대고 꼭 안은 채 체온을 나누는 것을 리에프는 아주 사랑했지만, 쿠로오는 그러지 않는 편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귀에 입술을 바싹 대고 대낮에 어울리지 않는 음담패설이나 속삭여줄 때는 정말로.

쿠로오가 굳이 리에프의 매력을 꼽아야 할 상황이면 한번 쯤 입에 올리는 것이 그 목소리였다. 어눌한 발음도 나름 귀염성이 있었고, 내리깔면 딱 포식자인 사자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나쁘지 않다며 늘어놓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쿠로오는 리에프가 낮게 읊조리는 진지한 단어들에 선뜻 가벼이 질책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면 안돼? 나 많이 참았는데. 그 허벅지 존나 야한 거 알져? 아까 설 뻔 했다고. 넣고 싶어여.


그 목소리로 속삭이는 발칙한 밀담이란.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숨이 멎은 듯 할말을 삼켜버린 이후였다. 이, 이 새끼가. 귀가 홧홧하게 달아오른 걸 자각한 것은 밀착한 몸 뒤로 꼬리뼈 즈음 노골적으로 닿아오는 천박하리만치 직설적인 섹스어필과 거의 동시였다.

좆까.

악! 한번에 나가떨어진 리에프는 팔 다리가 길어 거미같았다. 씩씩대는 쿠로오 테츠로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새빨갛다. 진짜, 진짜 씨이발. 할 말을 못찾고 더듬더듬 욕설을 뱉어내는 게, 아. 진짜 귀여워. 저게 선배야?

걷어차인 정강이가 찬 사람이 스포츠 부 주장인 만큼 얼얼함을 넘어섰지만 리에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목덜미까지 벌개졌네, 그렇게 노골적이지도 않았는데. 스포츠 타월로 얼굴을 가리며 저 만치 도망가버린 주장을 쫓는 발걸음이 얻어 맞은 다리로도 참 가볍다.

같이 가여!

단언컨대, 오늘은 베드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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